로봇과 인간이 우열을 가리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대결이 시작됐고, 인간이 인공지능에 패하면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는 시대가 됐다. '나'는 로봇으로 살 게 아니라,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나를 찾아야 할 때라는 게 미래학자들의 예언이다. <사진은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

"푸른 요정님, 제발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세요."

인공지능을 지닌 어린이 로봇인 데이비드는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난 후, 피노키오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 동화 속 요정에게 소원을 빈다. 자신도 엄마에게 사랑 받을 수 있도록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고, 요정은 없었고, 데이비드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이 슬프고도 잔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1년 작 ‘AI(에이 아이)’다.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인공지능이 만들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나는 그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논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인공지능이 불러올 돌풍은 바로 ‘나’가 누구인지 모호해진다는 데에 있다. 여기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있다. 그런데 그 앞에 자신보다 능률이 뛰어나고, 가사 일도 척척 하며, 심지어 풀가동을 해도 지치지 않는 또 다른 ‘가장 로봇’이 나타난다면? 가장이 사회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사람은 일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아 존중감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끼는 사회적 존재이다. 허나 인공지능이 도입 되면 이 중요한 과정조차도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곧 사람들은 생명력을 잃을 것이고, 그것이 곧 로봇들이 모든 것을 하게 되는 무기력한 사회를 낳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나’가 누군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철학의 부상’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로봇은 ‘나’가 누구인지 사고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여태까지 ‘기계처럼’ 반복적인 노동을 하고, 돈을 벌며,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전쟁에 뛰어들기 바빴다. 현대인들에게는 ‘나’에 대한 탐구보다 생계유지가 더욱 중요하였다. 허나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 기업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이러한 역할을 요구하지 않으며, 이제는 ‘누가 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느냐’라는 상상력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사고(思考)를 넓혀야 한다는 뜻이요, 그러기 위해서 ‘철학’은 필수 과제가 되는 셈이다.
 

미국의 장수 퀴즈쇼인 제퍼디(Jeopardy)에서 최장 우승자였던 켄 제닝스(Ken Jennings)는 인공지능과의 퀴즈 대결에서 패한 후 이런 말을 하였다. “저는 컴퓨터가 생각하는 시대의 첫 희생양이예요. 문제는 제가 끝이 아니라는 거죠.” 이 말은 앞으로 인공지능으로 인해 변할 인류 사회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21세기의 인류 사회는 ‘나’가 누군지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시대였다. 생계에 치여서,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계적으로 일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같은 삶을 살다가는 급격하게 다가오는 인공지능의 사회에서 진정 ‘나’의 존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예상으로 볼 때 우리는 로봇을 활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서 로봇과 ‘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곧 인공지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진정 인간의 로봇의 조화를 이룩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보자. ‘나’는 누구인가?
정누리 (마산동 거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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