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날에

(( 엄니!
  가슴을 찢는 이 속울음만으로
어찌 엄니에게 감히 용서를 빌겠습니까

스무 살이 넘도록 가슴에 품어 키운 손주 조차
기억 못하시는 엄니가
밤마다 밤마다
아이 찾아 어둠속을 헤매시던
그 아이가 누굽니까
스물에 낳아 홀로
거친 논밭에서 품팔이로 키운 아이
그 아이가 이 밤중에, 이 어둠속에
어디 갔을까 어디 있을까
왜 안보일까

그 아이 눈썹에 서리꽃이 하얀데
밤마다 그 아이 찾아 더듬는 엄니의 애절함
그것이 치맵니까?
눈썹에 서리꽃 하얀 아이가 엄니 묘 앞에서
속울음으로 목 놓아 흐느끼는
이것이 효돕니까?

엄니!? ))
 

  엄니는 89세에 작고 하셨다. 작고하시기 4년전부터 치매가 슬그머니 엄니를 건드리더니 2년후부터는 치명적인 시련 속으로 내몰아 엄니는 물론, 온 식구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어릴적부터 품안에 품고 귀여워하신 손주들은 물론, 홀로 애지중지 애틋히 키우신 외아들조차 엄니의 기억 밖이었다. 오직 잡수시는 거와 용변 목욕 등 궂은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쏟는 며누리만 알아보셨고 미안해 하셨다.
머리가 허연 아들이 엄니가 거처하시는 방문을 열고 고개를 드리밀라치면 <할아베가 여기 왜 들어와요. 나가요!> 하고 무섭게 역정을 내셨다. 아들은, 엄니의 아들임을 인지 하시도록 하기위해 애타게 엄니 곁을 맴돌았지만 허사였다.

   어느 날 깊은 밤이었다. <얘, 아들아 어딨어? 얘, 아들아 너 어딨냐?>
아들은 엄니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거실로 급히 나갔다. 당신 방에서 나와 컴컴한 거실을 더듬거리시며 엄니가 베란다 유리문쪽으로 기어가신다. 아들은 거실에 불을 켜고<엄니 저 여기 있어요.>하곤 주름 가득한 엄니 손을 덥석 잡았다. <어, 이 할아베가 왜 또 왔어요. 얼른 나가세요!>

겁먹은 엄니의 눈길이 차가우시다.
젊었을 때 키우던 아들의 모습만이 기억에 그리워 애타게 찾으시는 것이었다.
 그해 9월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다.
문득 엄니가 생각나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니 방문을 열었다.
밤이면 늘, 깔린 요위에 이불을 덮고 단정히 주무시던 엄니가 요와 이불을 이탈해 한데서 꼬부리고 누워 계셨다. 아들은 엄니를 반짝 들어 포근한 요위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드렸다.
 

<여보 춘호 아빠? 빨리 와 봐요! 엄니가 숨을 안 쉬세요> 엄니방에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집안을 뒤 흔들었다.
<그럴리가. 두어시간 전에 엄니를 편안하게 뉘어 드렸는 데(?) > 아들은 믿기지 않아 반신반의하면서 급히 엄니방으로 들어섰다.
<아, 이럴수가!>
숨을 거두신 엄니에게 임종도 못 해드린 죄의식과, 엄니사랑의 종말이라는 현실에 아들은 한없이 오열했다.
 

불효를 뉘우친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만, 그래도 어버이 날에는  부모님을 되새김 하게 된다.

이준안
전 산림조합장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