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돈<32>
 

도깨비 감투 이야기를 하신 분이 저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 손님들은 숙연해졌습니다. 내가 하는 재담이 뿌리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모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술상을 차려 가지고 와서 내 앞에 놓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혹부리 영감, 비가 통 그치질 않네. 재미있는 이야기 들었으니 술 한잔하시오.”
밖에서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는데 술상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 했습니다. 문득 어렸을 때 아버지가 들려준 도깨비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서울 을지로 아니 구리개에게 실제로 있었다고 합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대한민국 을지로는 그 당시 구리개(銅峴)라고 부르는 한약방 거리였습니다. 이 자리에 염포교가 있었더라면 매 같은 눈으로 쏘아보았을 것입니다.
“외진 곳에 허름한 한약방 하나가 있었습니다. 다른 한약방은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기 일쑤였지만 이 집주인은 매우 정직한 사람이라 늘 생활에 쪼들렸습니다. 주인이 밖을 내다보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도롱이를 쓴 괴이한 모습의 중년 사내가 등짐을 지고 낑낑거리다 소낙비를 피해 한약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주인은 무거운 짐을 마루에 놓게 하고 따뜻한 물을 건네며 쉬라고 말했습니다. 친절한 주인에게 감동했는지 사내는 짐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명나라 은전입니다. 어디다 맡겨도 되겠습니까?”
주인은 그 말에 놀랍기도 했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것에 기분이 좋아 승낙했습니다. 비가 그치자 사내는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며칠 후에 약값을 받으러 약초상이 왔습니다. 돈이 약간 부족하자 할 수 없이 보따리를 열어 대금을 치렀습니다. 은자를 본 약초상이 감초가 품귀할 것이니 사두면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그 말에 맡겨둔 돈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덥석 돈을 털어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곧 후회했습니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하지만 이미 약초상은 돈을 가지고 떠난 뒤였습니다. 주인은 자신을 믿어주었던 사내가 찾아올까 봐 조바심을 쳤습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끙끙거리는데 며칠 뒤에 감초 값이 폭등해서 원금을 되찾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 뒤로 한약방은 번성했는데 주인이 정직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들어 너도나도 이곳에서 약을 샀기 때문입니다. 요령이 없다고 타박을 주던 다른 한약방 주인들은 무색해서 정직하게 약을 팔아야 했습니다.

부자가 된 주인은 사내가 언제 돌아올 것인가 궁금해했지만 일 년, 이년이 지나도 사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삼 년이 되는 해 문득 문밖으로 내다보니 바로 그 중년 사내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얼른 뛰쳐나가 중년 사내의 팔을 붙잡아 끌고 그때 맡긴 돈을 유용해서 돈을 번 것을 사과하며 이자까지 쳐서 두 배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주인장은 참 정직한 사람이군요. 사실 난 인간이 아니라 도깨비입니다. 주인이 마음만 정직할 뿐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이 딱해서 그 돈을 준 것이니 아무 걱정 말고 좋은 것에 쓰도록 하시오.”
하고는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으로 말을 끝냈습니다. 여기저기서 장사치들이 헛기침했습니다. 손님이 어리숙하면 바가지를 씌웠던 것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아, 비가 그쳤네. 나도 그런 도깨비나 만나 금세 발복했으면 좋겠네.”
주막집 여주인이 밖을 내다보며 말했습니다.
손님들도 그런 마음이었겠지요.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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