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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 이야기] 도깨비가 쌓은 둑 (30)

도깨비가 쌓은 둑 (30)
 

내가 망신을 당하고도 재담을 하겠다고 하자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아까 턱수염이 무성한 장사치가 대접에다 탁배기를 잔뜩 부어서는 가져왔습니다. 단숨에 들이키고 주모가 건네주는 너비아니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는 입을 열었습니다.
“이건 제가 저 남녘에 갔을 때 그 동네 노인에게 들은 말입니다. 그곳은 곡창지대인데 한 가지 걱정거리는 보가 없다는 것입니다.”

보(洑)가 없어 물을 가두지 못해 비가 많이 안 오면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돈을 내서 둑을 쌓아 보를 만들려고 했지만, 워낙 넓은 곳이라 만드는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억지로 겨우겨우 만들면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둑이 무너지는 바람에 허사가 되곤 했습니다. 이렇게 몇 번 무너지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때 포도청에서 포졸로 있다가 잠시 휴가를 맡아 고향으로 돌아온 ‘막손’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늦겨울에 돌아왔을 때 동네는 웅성거렸습니다. 농사짓기에 오랜 경험이 있는 노인들은 가뭄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보가 있었으면 물을 가뒀다가 수월하게 모내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막손은 어렸을 때 기억을 더듬어 갔습니다.
“으흠, 그때 어른들이 말했지, 누군가 몰래 둑을 무너뜨린다고.”
막손도 어젯밤까지 멀쩡했던 둑이 아침에 가보니 무너져 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고의로 둑을 무너뜨려 마을 사람들에게 낭패를 보게 한 것이 누구일까? 늘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가 도성으로 간 뒤에도 두 번이나 둑을 쌓았지만 몇 년 못 가 무너졌습니다. 포졸출신답게 막손은 동네 노인들을 찾아가 무너진 날짜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둑이 무너지기 전날 밤 어디선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며칠 뒤 보름달이 뜨는 날 저녁에 그는 보 자리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풀 속에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밤이 이슥해지자 캄캄한 밤에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둘 보이던 것이 어느덧 수백 개가 되더니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도깨비 형상이지요. 이들은 보 자리에서 막걸리와 메밀묵을 먹으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놀았습니다.

짐작대로 도깨비들이 이곳에서 놀다가 둑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막손은 도깨비 두목이 누구인가 살펴보다가 포승줄을 꺼내서 기어가서는 얼른 묶었습니다.
“이놈들, 꼼짝 마라!”
흥겹게 놀던 도깨비들은 금세 얼어붙었습니다. 겁 없는 인간이 두목을 붙잡고 위협을 하니 일제히 엎드려 항복했습니다. 막손이 둑을 무너뜨린 것을 추궁하니 몇 년 만에 한 번씩 이곳에 와서 놀다 그런 것이라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않겠다고 맹세하자 막손은 둑을 다시 쌓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도깨비들은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채석장의 돌을 가져다 튼튼히 쌓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맙소, 그럼 나도 보답을 하겠소. 당신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오?”
포승줄에서 풀려난 도깨비 두목은 도깨비들은 콩을 좋아하니 콩 한 되만 삶아서 달라고 했습니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온 막손은 콩을 찾아 삶았습니다. 몇 시각 뒤에 콩을 삶아서 돌아와 보니 도깨비들은 채석장에서 캐서 다듬은 돌을 쌓고 있었습니다. 영차, 영차. 드디어 돌로 튼튼하게 쌓은 둑을 보자 막손은 삶은 콩을 내놓아 먹게 했습니다. 도깨비들은 할 알씩 먹었는데 마지막 한 개가 부족해서 먹지 못한 도깨비가 생겼습니다. 잔뜩 심술이 난 도깨비가 자기가 쌓았던 돌을 휙 잡아빼고는 다른 도깨비들과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깨비가 쌓은 둑은 성벽처럼 튼튼했지만 한 명의 도깨비가 빼 버려 동네 사람들이 대신 쌓은 곳에서는 가끔 물이 새곤 한다고 합니다.”

최영찬 소설가

최영찬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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