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사설·기고 기고
[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바보 도깨비 <29>

바보 도깨비 <29>

마송장에 도깨비 출현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접한 나는 곧바로 마송장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흥분이 가라앉자 의심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몸은 비록 조선 중기에 있지만, 정신은 몇백 년 뒤에 있는 제가 아닙니까? 그 몇백 년 동안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라고 할까요. 하여튼 이곳에서 도깨비를 실제 보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난리 법석이지만 실제 외계인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생각이 드니 다리에 힘이 쭉 빠지더군요. 진짜 도깨비가 나타났다면 국가 안보에 선봉을 서는 염포교가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당장 마송장에 쫓아가서 요절을 냈을 텐데 그런 소리 들려온 적 없습니다. 제가 놀라는 꼴을 보고 장사치 몇 명이 키득거렸던 것을 상기하니 공짜 재담을 들으려고 뻥친 게 틀림없습니다. 하늘에서 후드득 하고 비가 내립니다.
“젠장, 명색이 재담꾼인 내가 그것들이 어디서 얻어들은 야담에 속은 거 아닐까?”
이렇게 중얼거리며 비를 피하려고 주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손님들이 왁자지껄하니 비 피한다는 구실로 모여서 술을 푸고 있는 모양입니다.

주모가 얼른 탁배기 한 잔을 가져오더니 재담 하나 하라고 합니다. 겨우 술 한 잔이지만 노는 입 놀려서 아까울 것 없습니다.
“에헴, 옛날 아주 오래전에 도깨비가 있었습니다.”
술 마시며 환담하던 손님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적어도 김포에서는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모두 귀 기울였습니다. 나는 혹을 툭툭 치고는 말을 이었습니다.
“어떤 마을에 얼굴이 아주 예쁜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도깨비는 그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고 작업에 들어갔, 아니 수작을 붙였습니다.”
하마터면 요새 말인 작업을 쓰려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습니다.

동침의 대가로 도깨비가 가져다준 물건으로 잘살게 되었다는 말을 하며 앞을 보니 손님들이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가 막혀서 눈만 멀뚱거리는데 저쪽에서 웬 장사치가 소리쳤습니다.
“이보슈, 혹부리 영감. 그다음은 나, 아니 여기 손님들도 다 알고 있소? 옆집 할멈이 과부가 핏기가 없는 것 보고 도깨비에 홀렸다고 말해 주지 않소?”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아마도 눈치를 보니 누군가에게서 재담을 들은 것이 분명합니다. 장사치가 에헴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말합니다.
“그래서 도깨비를 떼어내려고 도깨비에게 무엇이 제일 무서운 것이냐 물으니 말피라 하고 과부에게 도깨비가 무엇이 제일 무서우냐고 하니까 돈이라고 하자……”

장사치는 제법 재담꾼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게 다 과부가 도둑놈을 시켜 재물을 훔친 것 아니요? 관아에서 냄새를 맡고 추궁하니 도깨비짓이니 뭐니 하며 둘러대고?”
여기저기서 맞아! 맞아! 하며 장사치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습니다. 그러면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니 재담꾼인 내 얼굴이 화끈하고 달아올랐습니다. 술 한잔에 재담한다고 했다가 망신 톡톡히 당하는 날입니다. 그러자 내 꼴이 안 되었는지 주모가 나섰습니다.
“여보시오들, 그건 그년이 포졸이 다그치니까 꾸며댄 말이고, 나도 그 사건이 나기 전에 혹부리 영감, 당신에게 들은 적이 있소. 아마 그 과부도 재담을 들은 것이 분명하오.”
그제야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마터면 크게 망신당할 뻔한 것을 모면한 나는 크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내가 전에 이야기한 것을 과부가 꾸며댄 모양이오. 내가 처음 내놓는 재담인데 도깨비가 둑 쌓은 이야기를 할 것이오.”

최영찬
소설가

최영찬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최영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