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김포불교<4>

산죽은 군락을 이루고 절은 보이지 않는다
 

정현채
사단법인
지역문화전략연구원장

문수사에는 조선 현종9년(1668)에 세운 풍담의심(1592~1665)의 행적을 기록한 비가 있고 사리를 모신 묘탑이 있다. 스님은 통진(通津) 출신으로 전국에 있는 사찰을 순회하면서 불교를 전파하는 선승이었다. 풍담스님이 전국을 다니면서 불교를 전파하던 중 문수골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세 사람이 나타나 문수사 스님들을 일깨워 달라는 부탁을 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풍담스님이 문수사와 인연을 맺는 과정과 법력이 높았음을 알려준다. 풍담스님은 조선중기 불교를 중흥시킨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 편양언기의 법맥을 이었다.

"踏雪夜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을 밟으며 밤길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뒤에 오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니" 백범 김구선생이 1948년 남북협상을 위해 38선을 넘을 때 읊은 서산대사의 시다. 이 시는 백범선생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때 선조의 요청으로 승군을 조직하여 평양탈환작전에 참가했으며 그의 4대 제자는 사명유정(四溟惟政), 편양언기(鞭羊彦機 1581~1644), 소요태능(逍遙太能), 정관일선(靜觀一禪)이다.

풍담스님의 스승 편양언기는 금강산에서 19세까지 수행을 하였고 평안도의 목장에서 양치기 생활을 하였다. 그런 연유로 편양당(鞭羊堂)이란 당호를 얻었다. 그는 평양성에 살면서 걸인들을 보살폈다고 한다. 풍담스님은 서산대사의 손자 제자며 스님의 비는 문수산 문수사를 비롯하여 해남 대흥사와 북한 보현사에도 있다.
문수산 아흔아홉 골 중에서 문수사를 동북쪽으로 넘어가면 돌부처가 있는 부처골이 있으며  흥룡사와 용호사가 있는 흥니골과 배니골을 만난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폐사지다. 흥니골(흥룡골)의 흥룡사(興龍寺)와 배니골(배닛골)의 용호사(龍虎寺)를 확인하기 위해서 문수산 지킴이 정유현님과 류지만 前 문화원장님에게 부탁해서 동행하게 되었다.

두 분의 도움으로 폐사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가는 사람은 절(寺)로 가고 싶어도 가는 길을 모른다. 사람이 다니지 않은 길이며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무가 쑥대처럼 빽빽하게 있어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마을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곳이다.
바다에서 융기된 다양한 돌들을 보면서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작년에 용호사를 어렸을 적 보았다는 어른을 만났다. 당시는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신동국여지승람에 비아산에는 문수사와 흥룡사가 있다고 하며, 흥룡사 동쪽 골에는 용호사가 있다.(김포지명유래집). 삼국시대부터 절이 있었다고 한다. 흥룡사는 현재 터만 남아 있으며 빈대가 많아서 중이 절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찰의 역사를 알고 싶으나 마을 사람들에게 구전된 이야기뿐이다.

흥룡사 터로 올라가는 계곡에서 몇 개의 와편을 볼 수 있는 정도다. 절터는 암자 수준의 규모로 보였다. 흥룡사로 볼 수 있는 것은 계곡의 이름이 흥니골 또는 흥룡골(興龍谷)로 불리고 있으며 마을 이름은 본래 흥룡리(興龍里)라는 것이다. 현재 이름은 용강리다. 1914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흥룡리(興龍里)와 강녕포(康寧浦), 두 마을의 앞 자만 따서 용강리(龍康里)가 되었다.

이곳에는 용(龍)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만물을 이롭게 하는 용에 대해서 주역(周易)에서는 잠룡(潛龍), 현룡(見龍), 비룡(飛龍), 항룡(亢龍)이라 했다. 잠룡은 물에 잠긴 용이니 지금은 쓰지 못하여 때를 기다려야 하며, 현룡은 땅에 나타난 용이니 큰사람을 만나야 빛을 발한다. 비룡은 하늘에 오른 용이니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며 항룡은 지나치게 높은 용으로 뉘우침만 있다. 용의 덕(德)으로 지조를 세상과 바꾸지 아니하고 언행을 미덥게 하여 간사함을 막고, 정성으로 덕을 넓게 펼친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다. 비룡은 하늘의 덕을 갖춘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으며, 항룡은 자리가 지나치게 높아 후회한다는 의미다. 주역(周易) 중천건(重天乾)괘에 있는 용(龍)에 대한 이야기다.

흥룡(興龍)은 지위와 관계없이 자비와 덕으로 만물과 평화롭게 살아가라는 비전으로 제시된 의미로 생각한다. 흥룡사 터를 확인하고 반대편으로 넘어 갔다. 배니골이다. 배니골은 계곡에 물이 고여 있다.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조건이다.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 절터가 있다. 절터 주변에 와편과 그릇 파편 및 작은 절구가 있으며 인근에는 호랑이굴이 있고 아래 마을에는 용이 살았다는 용연(연못)이 있다. 용호사(龍虎寺)로 보인다. 호랑이는 마을을 지켜주고 산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불교가 전래되고부터는 불교와 융합하여 사찰에 있는 산신각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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