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참 아름답다


                            이호걸

 

지표면은 실타래처럼 단단한 야구공이었어 사인받은 책처럼 꽃병에 꽂은 장미가 며칠은 붉었어 차선이 몇 가닥 보이지 않는 도로, 비가 되지 못한 물방울은 바닥에 흘러내렸어 고온 다습한 발은 한 발씩 떼며, 차고 어린 현실을 버릴 때 꽃은 피었다니까 뿌리가 없는 꽃이므로 태양은 오로지 밝았어 발을 잊고 잠자리에 든 유치원은 발목까지 못쓰게 되었어, 어른들은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경기장 바깥으로 튀어나온 야구공, 실밥은 하늘거리며 지휘대로 긴 방망이만 그릴 거야, 안개 그친 날 아버지는 다시 긴 공을 던질 거야

 

[프로필]
이호걸 : 경북 칠곡, 저서[가배도록1,2,3][카페 조감도][커피향 노트], 카페 조감도 경영

[시감상]
4월의 아침이면 안개가 짙게 깔린다. 안개에 잠긴 도시는 동화책의 한 부분처럼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시인의 말처럼 안개는 도로가 되기도 하고, 야구공이 되기도 하고 살아오면서 가져보지 못한 꿈 꿔보지 못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태양이 뜨면 도시는 다시 제 모습을 찾는다, 안개의 몽환에서 벗어난 우린 현실 세계로 이내 들어간다. 안개는 그런 것이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해 주는, 가리고 싶은 것을 가리게 해주는 내가 소유한 장막이며 안경이다. 스멀스멀 봄 안개와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날 때 그 속에서 우린 무엇을 볼 것인가? 정작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안개 속 같은 현실이지만 볼 것은 또렷하게 보자. 그 속, 안개 속에서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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