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모교사랑, 사비 5천만원들여 장학회 설립



“9남매 자녀들이준 용돈 모아 작은 결실 큰 보람”

우리들은 가끔 신문지상을 통해 평생 모진고생을 이겨내며 모은 큰 재산을 후학들을 위한 장학기금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착기금으로 쾌척, 사회에 귀감이 된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때마다 큰 감명을 받아 가슴이 뭉클해지고 마음도 숙연해진다. 그리고 부러움과 더불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 그 고마움에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월곶면 조강리가 고향으로 현재 서울시 금천구 독산본동에 거주하시는 올해 93세인 鄭瑗錫옹도 모교와 고향 사랑이 남다른 출향인이다.
그래서 우리 후배들이 깊이 본받고 존경해야 할 분중 한 분이다. 월곶면 조강리 6번지서 부농인 부친 정한교씨와 모친 최씨한녀의 4남3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업과 정미업을 통해 크게 성공한후 현재 서울 독산본동서 4남 정태완(60)씨가 운영하는 병원일을 20여년째 돌보고 있는 鄭옹은 세상에 태어나 한가지 보람있는 일을 해 보자는 생각끝에 전 재산 5천만원을 모교인 월곶초등학교에 쾌척, 그 이자로 올해까지 3년째 후학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그동안 지급해온 장학금만도 2000년 29명에 2백90만원, 2001년 54명에 2백70만원, 2002년 33명에 1백675만원등 3년간 모두 총 7백25만원에 이르고 있다.
더우기 鄭옹은 6·25 사변으로 조강포 뱃전이 없어지고 뱃길(조강-개풍군)이 끊기면서 어촌과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져 부득이 1950년 인천으로 이사한 비운의 출향인사로 고향 조강리엔 단 한명의 친인척과 친구도 없어 더욱 값진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이같은 사례는 김포시 전체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일이어서 향토인및 후학들에게로 교훈이 되고 있다. 부인 조준옥여사(1983년 작고)와의 사이에 태영(72·전매청 근무 정년퇴임, 태웅(70·서울 동구여상 교사(정년퇴임), 태수(62) 서울상대졸, 미국 워싱턴주 공인회계사, 태완(60·서울의대졸, 서울 독산본동서 영일의원 20년째 운영, 태훈(53·미국 체신부근무)등 5남과 인숙(74), 영숙(68), 점숙(55), 흥숙(51)씨등 4녀를 두고 있는 鄭옹은 자녀 9명을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켜 훌륭한 사회인으로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조부님이 월곶면서 당시 두번째인 4백석 부농이었다는 鄭옹은 월곶초등학교 제11회로 초등학교를 3년만 다니고도 휘문보통중학교(5년제)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할정도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자유당시절 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낸 장경근씨라 휘문중고 동창으로 장씨는 예비합격자였으나 후일 크게 성공, 한국정치사에 중심에 서기도 했다고 술회한다.
초등학교를 12세에 입학(일제치하)하여 일주일만에 더 배울것이 없다며 자퇴한 鄭옹을 불러 타이른후 2학년에 월반, 3년만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4년째)40일간 담임 이의종 선생님으로부터 특별 야간수업을 받아 (지금의과외수업)6년과정을 모두 이수하였다는 鄭옹은 남다른 열정으로 제자를 이끌어준 이의종선생님이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결정되었을지 지금도 의문이 된다며 지금까지 스승님의 숭고한 뜻을 사표로 삶의 교훈으로 삼고 지낸다고 했다.
부인 조준옥여사(1983년 작고)가 曺봉암선생의 4촌동생 이어서 자유당정권시 큰 고초를 당하기도 하였다는 鄭옹은 이로인해 서울신문 인천지사장을 3년간 맡는등 본의 아니게 한때 언론인의 길을 걷기도 했다고 상기한다.
휘문학교 졸업후 친구들은 모두 공무원, 교사등 직장을 찾아 나섰지만 자신은 월급쟁이가 싫어 선배와 함께 광산업에 뛰어들었다가 이내 고향 조강리에 내려와 어업에 손대 크게 성공(당시 조강리에 선박 10여척중 4척 소유)하여 18년간 김포어업조합장을 역힘하기도 하였다는 鄭옹은 그후 6·25전쟁으로 조강리 어촌 120가구가 모두 강제 이주되었고 이후 하성 석탄리, 가금리, 하사리등 3곳에 정미소를 개설 크게 성공 당시 서울과 인천에도 주택을 마련, 자식들을 모두 유학시킬만큼 유복한 장년시절을 보냈다.
그후 3남이 거주하는 미국 워싱턴서 6년간 생활하며 한인 노인회장과 한인교회를 설립하는등 왕성한 활동을 한후 20여년째 4남 태완씨가 개업한 병원일을 돌보며 노후를 담담히 보내고 있는 鄭옹은 연말연시때 노인정과 동사무소등에 한번도 거르지 않고 50만원씩 보내 외롭고 쓸쓸히 보내는 이웃을 돌아보는 베품의 봉사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평소 무소위 철학속에 자식들에겐 남에게 피해를 주지말것과 베풀며 살것을 강조해왔다는 鄭옹은 건전한 사고의 삶때문인지 아직 카랑 카랑한 목소리, 민첩한 행동등 60대 건강을 잃지않고 있다.
아직 어느곳 하나 불편하거나 아픈곳이 없다는 鄭옹의 건강비결은 금연(한번도 피워본적 없음), 소식, 규칙적인 생활.
하지만 정원석옹의 남다른 건강과 인생성공 비결은 개업이후 20년째 병원 운영을 아버지께 맡기고 자신은 오직 진료에 전렴하고 있는 4남 태완씨등 9남매 자식들의 남다른 효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업게 된다. <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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