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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근혜 시대와 이정미 시대

박근혜 시대와 이정미 시대

장호순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대통령 탄핵결정으로 대한민국은 비로소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킨 이정미 재판관의 선고는 권력교체를 넘어 시대 교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박근혜로 상징되는 전근대 권위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정미로 상징되는 법치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동안 불편하게 상호 공존하던 두 시대가 마침내 분리되는 모습은 탄핵 재판의 두 주역을 통해 잘 나타났다. 대통령 박근혜와 헌법재판관 이정미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각자 다른 시대의 사람이라고 할 만큼 다르다. 한 여성은 이미 지나간 시대를 살고 있고, 또 한 여성은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언론에서 주목한 그들의 헤어스타일에서도 그러한 차이가 잘 나타난다. 어머니의 헤어스타일을 버리지 못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헤어롤을 떼지도 못한 채 출근해야했던 이정미 재판관은 상반된 헤어스타일만큼이나 시대적으로 분리된 사람들이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긴 하지만 보통의 한국 여성은 아니다. 한 사람은 대통령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또 한 사람은 그런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는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두 여성이 권력의 정점에 다다른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박근혜는 부모 덕분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지만, 여성을 대표하는 정치인도 아니었다.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었기 때문에 선택받았다. 유권자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여성상은 그녀의 어머니가 보여준 역할, 즉 권력자의 충실한 내조자였다.

온 국민이 초조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대통령 탄핵 판결문을 낭독한 이정미는 부모의 후광이나 연고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법관이 되었고, 자신의 역할을 그야말로 완벽하게 수행했다. 탄핵 선고일 아침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위에 남아있는 헤어롤은 역사적 책임감과 중압감을 치열하게 헤쳐 나아가는 현대 한국 여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머리 손질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 박근혜 대통령과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게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인물임을 보여주었다.

사는 시대가 다르기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박근혜처럼 과거에 매달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정미처럼 과거의 낡은 굴레를 벗어버리려 분투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통령 탄핵 찬반 진영 간의 대립은 한국사회에 병존하는 전근대와 현대의 시대적 중복현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탄핵반대자들은 대부분 시대 변화를 인정하기 싫은 고령자들이었고, 탄핵지지자들은 권위주의 시대유산을 청산하려는 젊은이들이었다. 탄핵 선고 직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탄핵찬성 의견이 76.9%였는데, 연령별 찬성비율을 보면, 20대(93.1%), 30대(92.3%), 40대(86.0%), 50대(73.8%)였는데, 60대 이상에서는 탄핵찬성비율이 48.3%에 그쳤다. 현재의 대한민국에는 전근대적 정치의식과 반공 피해의식에 매몰된 사람들과, 권력은 국민에 있다는 주권재민 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한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각기 다른 것이다.

탄핵국면에서 분출된 집단적 균열은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세대 간 시대정신의 차이에서 생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떠나가는 시대를 붙들고 연장하려는 사람들과 시대의 끝자락과 과감히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생기는 불가피한 마찰이다. 박근혜와 이정미는 각각 그러한 시대와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탄핵 이후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국민통합을 내세우며 세대 간 갈등과 시대적 차이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시대를 벗어나 살 수는 없다. 박근혜는 이정미 시대를 살 수 없고, 이정미도 박근혜 시대를 살 수 없다. 서로의 시대적 차이를 인정하고, 대립과 마찰을 최소화하는 길 밖에 없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 우리 모두 머지않아 후손에게 대한민국을 맡기고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장호순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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