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묘, 불효자 묘<26>

조강포 주막에서 하룻밤을 자고 강령포로 걸어갔습니다. 문수산 아래에 있는 이 포구는 조강으로 들어오는 배의 화물을 부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부유한 포구로 객주가 환갑을 맞아 재담꾼인 저를 부른 것입니다. 손님이 와글거리는데 누가 조강포에서 들은 이야기가 재미 있었다고 묘에 얽힌 이야기를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원래 준비한 재담 대신에 묘에 얽힌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불효자가 발복한 것을 말했습니다.

“어느 동네에 성미가 고약한 불효자가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 망나니로 속을 썩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밖으로 떠돌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불효자에게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는 것이 귀찮았습니다. 거적에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가팔라서 올라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벼랑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밑으로 휙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하늘의 이치로 봐서는 이 불효자가 벼락을 맞아 죽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운이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의 서까래가 무너졌는데 누가 숨겨두었는지 금괴가 발견되거나 홍수가 마을 쓸고 가자 자갈논이 옥답이 된다는지 하는 행운이 줄을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도 무심하다고 한탄을 했습니다. 갑자기 부자가 되자 불효자의 횡포가 심해졌는데 이 마을을 지나던 지관이 찾아가 아버지의 묘소가 어딘가 물었습니다. 파렴치한 아들은 벼랑을 가리켰습니다. 지관이 올라가 보니 벼랑 밑 오목한 곳에 소나무가 있고 백골이 걸쳐있는데 천하에 보기 드문 명당임을 알았습니다. 만약 불효자가 아니었더라면 지금보다 몇 배 더 부자가 되었을 곳입니다.

“쯧쯔쯔, 이제 천벌을 받을 때가 왔다.”
지관이 이렇게 말하고 가버렸는데 며칠 후에 벼락이 소나무를 쳐서 백골이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그 뒤로 불효자는 병이 들고 재산도 줄어서 마침내 걸인으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그다음 재담은 착한 사람이 발복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마을에 고아 한 명이 부잣집 머슴으로  들어왔습니다. 온종일 고된 일에 시달리다가 모처럼 쉬려고 하는데 주인집 아들이 부릅니다. 나가 보니 아이들이 장례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를 엮어 상여를 만들고 그 위에 판자로 관까지 만들어 올려놓았습니다. 고아인 머슴에게 상주 노릇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은 부모가 다 살아계시니 상주 역할이 껄끄러웠겠지요. 두건 쓰고 상장 짚고 꺼이꺼이 곡을 하며 뒷산 양지바른 곳에 땅을 파고 관을 묻으면서 장례놀이는 끝났습니다. 그 뒤로 머슴은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가짜 묘에 가서 하소연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고아 머슴은 새경으로 험한 땅을 사서 개간을 하며 재산을 늘려갔습니다. 장가를 들어 아들딸도 낳았는데 모두 영특하고 제법 산다는 소리를 들으며 말년을 편하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명당을 찾아 떠도는 지관이 사랑채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과객에게 인정을 베푼 주인에게 감사하며 선조의 묘자리를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뒷산에 함께 올라가게 되었는데 지관이 말합니다.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작은 부자는 될 수 있는 명당입니다.”
주인은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 무덤은 조상의 무덤이 아니라 아이들이 꾸며놓은 가짜 묘라고. 그러자 지관이 무릎을 치며 말했습니다.
“비록 시신이 없는 무덤이라고 해도 인정 많은 어른이 부모님 묘처럼 자주 찾았기에 명당의 좋은 기가 흘러간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씀이 하늘을 감동시키면 발복한다는 말로 끝냈습니다. 잔치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객주의 환갑을 축하하면서 나의 재담도 끝났습니다.

최영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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