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여 안녕히

오전이면 끝낼 줄 알았다. 아니었다. 오후 늦도록 이것저것 버리기에 열중했다. 서랍장 정리에 책상 정리, 근 30년 세월이 쌓인 흔적을 지우려니 그게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모아두었던 것들이 이제 보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짐 정리가 자꾸만 지체된 것은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오는 아이들의 쪽지와 편지 때문이었다. 2014년 것도 있고 2000년 것도 보인다.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게 된다. 텅 빈 교무실에 홀로 앉아 가물가물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기운다.

아이들은 민망하게도 나에게 고맙다고 썼다. 편지의 마지막은 대개가 “사랑합니다.” 사랑한다는 소리를 평생 듣고 살았으니 난 행복한 교사였다. 이 행복을 포기하고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이다. 수업조차 버거울 만큼 형편없어진 몸이 문제다.

언제부턴가 나는 학교에 짐이 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동료 교사들에게도.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못내 힘들었다. 제대로 하든가, 그만두든가. 늘 이런 생각으로 살았다. 그런데 더는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마음도 몸과 함께 시들어 허우적거렸다.

교직의 꽃은 담임이라는데, 담임을 해야 진짜 선생이라는데, 나는 이제 담임직을 수행할 자신이 없다. 아이들 대학 진학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생활기록부 쓰는 게 겁난다. 어떻게든 요령껏 담임 빠질 방법이 있겠지만 그렇게 살기는 싫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사직서를 썼다. 정년까지 평교사로 교단에 서서 아이들이랑 역사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젊은 날의 내 꿈이 여기서 멈췄다.

지금 마음이 참 어수선하다.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어떤 이는 시원섭섭하겠다고 하는데, 시원하지는 않다. 직장 생활이 괴로웠다면 시원할 텐데 나는 힘들어도 학교가 좋았다. 특히 우리 양곡고등학교 학생들이 좋았다. 여전히 순수하고 따듯한 아이들 속에서 살았기에 행복하였다. 그래서 떠나는 심정, 아쉽고 허전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의미 있는 첫걸음을 시작한 큰아들에게, 아비 따라 교사 되겠다고 사범대학 진학한 작은 아들에게 미안하다. 아빠랑 함께 교단에 서고 싶다던 작은 아이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해 더 미안하다. 뭐 대단한 직업이라고, 자식이 교사인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사신 어머니에게 죄스럽다. 아내에게 미안한 건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래도 직장에 미안한 존재가 되느니 가족에게 미안한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위안 삼는다.

이제 3월이면 나는 소속도 직업도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무런 계획이 없다. 계획도 없이 직장을 떠나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이상하지 않기도 하다. 차분히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련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해보련다.

이제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삶을 흉내 낼 수 없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과 내 자식들은 연어 같은 뜨거움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종이배이고 싶다. 물 따라 흐르다가 어딘가에 멈추면 잠시 쉬자. 그리고 다시 흐르면 물과 함께 흐르리라.

정 선생 자리, 언제나처럼 깔끔하다. 내가 의지하고 살던 사람이다. 여기는 김 선생 자리, 진짜 선생다운 선생. 여긴 이 선생 자리네. 이 사람한테 신세 많이 졌는데. 한 바퀴 천천히 돌아봤다. 창밖으로 눈발이 날린다. 교정에 휘날리는 눈발이 나에 대한 격려였으면 좋겠다.

이제 교무실 형광등을 끈다. 우두커니 서 있다. 어둠마저 정겹다. 싱겁게 손을 들어 흔들어 본다. ‘학교야 고맙다. 덕분에 부모님 봉양하며 두 자식 이 정도 키워놓을 수 있었다. 안녕, 잘 있어.’ 교무실을 나선다. 뚜벅뚜벅, 오늘따라 내 발소리가 크게만 들린다. 텅 빈 복도를 가득 채운다. 뚜벅뚜벅.

양곡고등학교 교사
이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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