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經典)을 독해하다

                    차주일

 

포란 중인 꽃은 걷고 있다
바람 따위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진통을 인내한 궤적만큼 걸어나간 꽃잎
후광(後光)을 피우며 꽃이 된다
아기를 밴 여자가 걸어간다
그로 인해 꽃은 얼마나 어두운가
묵지(墨池)를 들어 올린 붓처럼
추호 흐트러짐 없이 일보일획(一步一劃)할 때
태아의 맥박이 연적(硯滴) 비워내듯 독경한다
아기 밴 여자의 여적(旅蹟)이 경전(經典)이다

 

[프로필]
차주일 : 계간 포지션 (position)발행인, 제 5회 시산맥 작품상, 시집[냄새의 소유권]외 다수

[시감상]
경전의 의미는 근거가 되는 가르침 혹은 전하여 가르침이 쓰여진 책자를 말한다. 사전적으로는 종교의 교리를 적어놓은 책이기도 하다. 수태한 여자의 모습을 경전에 비유한다는 것은 근원적 휴머니즘이다. 태아의 맥박은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이며 진일보하여 삶의 전반에 대한 시인의 사람사랑이라는 말 일 것 같다. 이제 곧 봄이다. 멀리 씨앗을 품은 산이 만삭의 키를 높일 준비를 한다. 태동하는 봄의 빛은 완두콩처럼 뭉근한 푸른빛을 머금고 있을 것이다. 우린 그 파릇한 색에서 희망을 읽을 것이다. 지금 어딘가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고 있다. 세상의 경전은 사람 속에 늘 존재한다.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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