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조건

 

염포교에게 된통 당한 후에 뺑덕어멈의 눈을 피해 뒷길로 다녔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뺑덕 어멈과 살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합니다. 뺑덕어멈도 혹부리 영감이라면 살림 차리고 싶다고 한다고 합니다. 관기(官妓)로 있을 때 뭇남자들을 홀렸다는 미모여서 솔직히 저도 처음 보았을 때 눈이 휙 돌아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조관념이 희박해 잘 생긴 남자만 보며 추파를 던지고 주둥이가 싼 것에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늦은 저녁에 막 골목길을 나서려는데 뺑덕어멈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들짝 놀라 골목에 숨어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궁둥이를 씰룩거리고 가는 것에 지나는 남자들이 멈춰서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몇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난‘그녀’를 머리에 떠올리며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그 아가씨처럼 착하고 예쁜 여자에게 장가들 거야.”
혹만 떼 내면 내 소원이 이뤄질 것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집도 없고 나이도 많은 늙은 총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재담꾼이라는 것에는 긍지가 있습니다. 오늘 가는 곳은 김포의 부잣집입니다. ‘혹부리 재담’이 널리 알려지자 양반들의 귀에까지 들어가 초대된 것입니다. 집안의 아녀자들도 함께하기에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사방에 횃불을 켰습니다. 양반님들은 마루 뒤의 보료에 앉았고 나는 발로 앞을 가린 마당을 보며 재담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재담은 재산에 관한 것으로 주제를 정해주었습니다.

 

최영찬 소설가



“김포 대곶에 대지주이면서 대명포구에서 새우젓 장사를 크게 하는 양반이 계셨습니다.”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발 사이로 마당의 돗자리에 앉은 아녀자들을 살피며 이어갔습니다. 주인이 당부하기를 요즘 딸과 며느리의 씀씀이가 헤퍼졌다는 귀띔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문이 계속 부유하려면 며느리가 살림을 잘 꾸려야 합니다. 딸도 시집을 가서 살림을 잘해야 친정에 폐를 끼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 양반께서는 며느릿감을 뽑기로 했습니다.”

양반은 며느리를 심사해서 뽑기로 하는 방을 곳곳에 붙였습니다. 조건은 작은 초가집에서 여종과 함께 쌀 한 말을 가지고 한 달을 견디면 합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랑집이 엄청난 부자이기에 가난한 집에서는 응모를 해보지만 한 달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두 여자가 한 달을 먹기에 적었던 것입니다. 어떤 아가씨는 쌀을 서른 개의 봉투로 나누어 먹어보기도 했지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 탈락했습니다. 이렇게 열 명 정도가 실패하자 응모하는 아가씨가 없어지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에 김포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 아가씨가 찾아왔습니다. 옷차림새는 허름해도 예쁜 용모와 총명한 눈빛을 가졌습니다. 양반은 마음에 들었지만, 시험은 통과해야 합니다. 아가씨가 초가집에 들어서더니 낯을 찌푸렸습니다.

“웬 집이 이렇게 더러워서야 어떻게 사람답게 산다고 하나? 깨끗이 청소해야겠네.”
아가씨는 여종에게 물동이를 가져오게 시키고 자신은 걸레를 들고 마루와 방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반짝반짝 윤이 나게 청소한 다음에 자기는 식탐이 많아서 많이 먹어야 한다고 두 사람이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한 다음에 여종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먹다가는 며칠을 먹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일을 해서 벌어먹어야지.”
아가씨는 여종에게 자신은 집 밖을 나가지 못하니 동네를 돌아다니며 삯바느질 일거리를 맡아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종은 그러겠다고 하고는 주인에게 첫날 있었던 일을 보고 했습니다. 주인 양반은 입이 헤벌어졌습니다. 진짜 며느리감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여종은 부지런히 삯바느질거리를 얻어왔는데 아가씨는 척척 해냈습니다. 마지막 날 양반이 초가집으로 가서 보니 집은 새집처럼 윤기가 반질반질 났고 쌀독에는 쌀이 넘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가씨는 부잣집 며느리로 뽑혀 살림을 잘 꾸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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