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숨결

                           정대구

 

가벼운 눈의 무게에 굴복
무릎 꿇고 백기를 든다
겁나는 무기도
자본의 높이도
세상의 소란도
가파른 인심도

항복이다 항복
어떤 반역도 괴변도
창검을 내려놓고 두 손 모아 고개 조아려 눈의 숨결을 경청
하는 아침

세상이 일시에 정밀한 승리감에 빛난다

 

[프로필]
정대구 : 대한일보 신춘문예(1972)시집 [흙의 노래]외 다수
[시감상]
전국이 폭설로 몸살을 앓는다. 강원도 지방엔 40센티가 넘는 눈이 쌓여 일상이 마비될 정도로 불편하기도 하다. 눈은 내릴 때와 치울 때의 느낌이 아주 다르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처럼 고요 속의 불빛이 아름답거나 도로에 쌓인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것,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래도 다소의 불편보다는 눈 내리는 날의 하늘과 산과 거리는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다. 세상의 소란도, 가파른 인심도, 자본의 높이도 모두 잊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들을 덮는다. 제설작업의 고단함을 잠시 뒤로 미루고 뽀드득 눈길을 밟아보자. 내 내면의 소리가 울림처럼 크게 들릴지 모른다. 그 모든 소리에 경청하는 눈 내린 아침이다. 깨끗하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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