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등급

풍문의 명성은 이미 김포를 떠나 인근 지역에 잘 알려졌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가 없는 시절이라 재담이 심심풀이 땅콩으로는 최고였지요. 거기다 비록 꿈속이지만 몇백 년 뒤의 삶을 체험하는 저의 재담이 다른 꾼들과는 다른 것일 겁니다. 제가 사는 선조 대왕과 서기 이천 년 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꿈속에서 역사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조선 아니 한국에서 역사가 수능에 편입되면서 텔레비전에 역사를 다룬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렴풋이 몇백 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알았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두리번거리자 돈을 안 내서 입을 떼지 않는 것으로 알았는지 항아리에다 종이지폐인 저화와 유엽전을 집어넣었습니다. 유엽전은 전쟁이 나면 화살촉으로 쓰려고 만든 것입니다. 몇백년 뒤 숙종 때 상평통보가 주조 유통되었기에 그 돈 대신 집어넣는 것입니다. 간혹 인심 좋은 객주께서 화폐로 통용되던 무명천을 집어넣었습니다. 돈도 좋지만, 문수산 도깨비를 찾는 것인데 눈에 띄는 것은 할아범으로 변장한 염포교뿐이었습니다. 아하~ 끈질기다, 끈질겨.

“으흠. 감사합니다. 어느 동네에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어느 동네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뱅이가 아흔아홉이면 부자는 한 명이니 누구나 선망했습니다. 이곳에서 제일 부유한 부자의 일과는 매일 아침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고개 숙여 절하며 존경의 표식을 보였습니다. 그러면 으흠 하고 헛기침한 후에 고개를 뻣뻣이 하고는 절을 받는 것이 낙(樂)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이사 온 키다리가 부자를 모른 체하고 지나갔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이보게, 왜 내게 인사를 안 하나? 키만 멀쑥하게 커가지고.”
키다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대꾸했습니다.
“당신이 내 아저씨도 아닌데 왜 인사를 한다는 말이오?”
“그으래? 내가 이 동네 최고 부자인데?”
“부자? 당신이 내게 돈을 주어 은혜를 베푼 것도 없는데 왜 인사를 한다는 말이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자 부자는 얼굴이 벌게져서 키다리를 올려다보며 외쳤습니다.

“좋아, 그러면 내 재산의 십 분의 일을 줄 테니 인사하겠니?”
키다리가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눈 딱 감고 절반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흥, 그러면 내가 똑같은 부자인데 인사를 한다는 말이오?”
말끝마다 한다는 말이오를 붙이며 대드는 키다리에게 부자는 성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완전히 체면이 구겨진 부자는 제안합니다.

“좋다, 그러면 내 재산 모두 줄 테니 인사하겠나?”
키다리가 비웃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부자이고 당신은 가난뱅이인데 왜 내가 인사를 한다는 말이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말고 어서 가 보시오.”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구경꾼들도 휙 돌아서 갔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부자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모든 것은 융성하면 쇠락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재물이 많음이 언제까지 인지 알고 낭비하거나 현재 건강하다고 몸을 마구 놀리면 병들고 맙니다.

이런 이치는 토정선생이 평생 공부한 주역에 있다고 합니다. 높은 곳에 있으면 낮은 곳에 있게 될 것을 준비하고 낮은 곳에 있으면 높은 곳으로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말하자 여기저기서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김포에 졸부가 많나 봅니다. 한국사회에서 졸부가 되면 큰 집을 사고 그다음은 명품으로 도배한다고 하지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그것도 부족해 마누라를 바꾼다고 하더군요. 나는 바꿀 마누라도 없는데.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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