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양이 다른 이유

눈을 번쩍 떴을 때는 아직도 캄캄한 밤중이었습니다. 달빛이 창문을 타고 방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동이 트려면 앞으로도 몇 시간이 더 있어야 합니다.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평등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요즘 왜 이런 꿈을 꾸지?”
한동안 미래가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했습니다. 내 꿈에 처음 나타난 것은 이상한 건물이 서 있는 곳에서 불덩어리가 날아가고 쇠방패 뒤에 얼굴에 가면을 쓴 남자들이었습니다. 독재타도! 독재타도! 이렇게 외치면서 젊은이들이 달려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엄청 무서웠습니다. 계속된 악몽이 미래라는 것은 토정 선생의 말씀으로 알았습니다. 이렇게 그림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귀에 들려오는 것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신병에 걸린 줄로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다 토정선생의 권유로 절로 들어갔다 환속한 지 이십 년 가까이 됩니다.


커다란 혹을 하나 매달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연명을 하는 가난한 재담꾼으로 가정을 꾸민다는 것이 어려운 줄은 압니다. 하지만 자식이라도 하나 낳아 구질구질한 현재보다 빛나는 미래를 보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물론 십몇 대 내려가야 좋은 세상을 보겠지만요.
“이눔의 혹!”
나는 혹을 떼어내려는 듯이 힘주어 잡아당겼지만 아얏! 하고 비명만 질러야 했습니다. 강제로 잘라내려다가는 피를 쏟고 죽을 것이니 도깨비를 꼭 만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절로 한숨만 나옵니다. 이윽고 아침이 되자 저는 세수하고 아침밥을 먹은 다음에 길을 나섰습니다. 두어 시각 걸어가니 조강포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의 재담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저는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혹을 툭툭 건드렸습니다.
“이야기는 제가 어려서 자랐던 마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고는 많은 사람 중에 혹시나 도깨비가 인간으로 변신해 끼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두리번거렸습니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하는 팬들만 보일 뿐입니다.


“김포 읍내에서 박서방이 푸줏간에서 고기를 썰고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본 것처럼 말했지만 실은 아버지가 남겨준 민담집에 쓰여 있는 이야기입니다. 백정은 최하층 신분으로 천시받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대개 북쪽 이민족이 이 땅으로 흘러와 보통 사람들은 하지 않는 도살업이나 고리짝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두려운 것은 몇십 년 전에 '임꺽정'도둑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과 항상 칼을 쥐고 일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포구에 기생하는 깡패들이 난폭하게 행패를 부려도 푸줏간에는 얼씬도 못했습니다.


그런 푸줏간을 양반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명절에 쓸 고기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평소 자기 신분을 자랑하는 양반님께서 고압적으로 말합니다.
“박가야! 고기 두 근만 썰어라!”
“예. 서방님.”
백정이 고기 두 근을 썰었습니다. 같이 온 양반은 백정이 천민이고 나이가 훨씬 어리지만, 아이까지 있는지라 반말을 쓰기가 거북했습니다.


“이보시오, 박서방 고기 두 근만 썰어주시오.”
“예. 서방님.”
고기를 썰어 짚에다 엮어 주는데 두 배나 더 많은 것을 보고 야단을 쳤습니다. 왜 저 사람의 고기는 훨씬 많으냐고. 그러자 백정이 대꾸했습니다.


“예. 아까 건 박가 놈이 썬 것이고 지금은 박서방이 썬 것입니다.”
이렇게 천민이라고 업신여기면 안 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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