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月串面(월곶면)의 변천과정

월곶면은 김포시 3읍 7동 3면의 하나이다. 월곶면은 삼한시대에 분진현에 속했다가 고려 초에 통진현으로, 조선시대에 다시 통진부로 승격되었다가 1903년 통진군으로 또다시 승격되었다.

영조 36년(1760)에 각 고을의 읍지(邑誌)를 모아 엮은 『여지도서(與地圖書)』의 통진부 방리(坊里:면·리)에 따르면 현 월곶면(月串面) 지역에는 부내면(府內面), 보구곶면(甫口串面), 월여곶면(月余串面), 겁을전면(迲乙田面)이 있었지만 이들 면이 모두 월곶면이 된 것은 아니고 후대에 얼마간의 변동이 있었다고 한다.

본래 통진군의 지역으로서 통진군청이 있으므로 군내면(郡內面)이라 하여 군하(郡下)·옹정(瓮井)·갈산(葛山)·점동(店洞)·고읍(古邑)·초막(草幕)·고양포(高揚浦)·능동(陵洞)·포내(浦內)의 9개 동리로 관할하였다. 그러다 1914년 군면(郡面) 폐합에 따라 보구곶면(甫口串面)의 보구곶(甫口串)·동막(東幕)·성내(城內)·강령(康寧)·흥룡(興龍)의 5개 동리와 질전면(迭田面)의 질전(迭田)·귀로(歸老)·동을산(冬乙山)·원통(元通)의 4개 동리, 월여곶면(月餘串面)의 개야(開野)·조산현(鳥山峴)·위곡(位谷)·고척산(高尺山)·남정(南亭)·서명(西明)·검암(黔岩)·조강포(祖江浦)·돌산(乭山)의 9개 동리를 병합, 월여곶과 보구곶의 이름을 따서 월곶면(月串面)이라 하여 김포군(金浦郡)으로 편입했다. 군하(郡下)·고막(古幕)·갈산(葛山)·옹정(瓮井)·고양(高陽)·포내(浦內)·성동(城東)·보구곶(甫口串)·용강(龍康)·조강(祖江)·개곡(開谷)·고정(高亭)·서암(西岩)·귀전(歸田)·동을산(冬乙山) 등의 15리로 개편 관할하였던 것이다.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하여 옹정·고정·서암·귀전·동을산의 5개리를 통진면에 넘겨 주어 10개리가 되었다.

면치소재(面治所在)는 군하리이며 1991년 이전에는 옛 통진군 감영(監營)을 면사무소로 사용하다가 1991년 군하로 276번길 20 위치에 면사무소를 건축해 2016년 6월까지 운영했다. 2016년 7월 4일 월곶면 군하로 263에 지상3층 규모(연면적 2,338.72㎡)로 면정업무와 주민자치센터로 구성된 복합청사로 이전 개관했다.

월곶은 동쪽은 하성면(霞城面)과 통진면(通津面), 남쪽은 대곶면(大串面), 서쪽은 바다 건너 강화군(江華郡) 선원면(仙源面)과 강화읍(江華邑), 북쪽은 바다 건너 개풍군(開豊郡) 임한면(臨漢面)에 닿아있다.

 

Ⅱ. 郡下里(군하리)의 변천과 역사문화

군하리는 본래 통진군 군내면의 지역으로서 고읍리에 있던 통진현의 아래쪽에 위치했으므로 군하리라 하였다. 한편, 통진 고을이 이곳으로 옮겨와 있었으므로 통진읍·통진 또는 읍내라고도 하였다.

1. 군하리의 변천과정과 구성

1) 군하리의 연혁과 명칭

숙종 25년(1695) 문수산성의 축성이 완료됨과 동시에 그 이전까지 현(縣)이었던 통진이 통진부(通津府)로 승읍호(陞邑號)하여 모든 제도가 부격(府格)에 맞게 바뀌었다. 정조 13년(1789)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의 통진부 방리(方里:면·리)에 비로소 부내면 소속으로 동변리(東邊里)와 서변리(西邊里)가 있고, 광무 3년(1899)의 『통진읍지(通津邑誌)』의 방리에는 앞의 두개 리를 합해 동서리(東西里)라 했다. 1914년 일제가 전국의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앞의 동서리를 군하리(郡下里)로 변경해 신설된 월곶면에 편입하였다. 이러한 편제는 광복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는 1리 시장, 2리 봉골. 3리 곰배를 두었다.

‘군하리(郡下里)’라는 명칭은 ‘군치소재(郡治所在)의 아랫마을’이란 뜻으로 1914년 통진군을 폐하면서 상징적인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예전부터 통진읍이라 불러왔는데 ‘통진읍’은 옛 통진부(군)의 읍치소재(邑治所在)가 있던 마을만을 가리킨다.

2) 군하리의 구성

군하리는 군하 1리 시장·2리 봉골, 군하 3리 곰배로 구성된다. 군하 1리 시장·2리 봉골은 군하리의 역사와 같이 옛 부내면의 동변리(東邊里)와 서변리(西邊里)였으나 광무 3년(1899)의 『통진읍지』에는 앞의 두개 리(로)를 합해 동서리(東西里)라 했다가 1914년 군하리(郡下里)를 두면서부터 옛 통진읍을 1리 시장이라 했다.

이 지역은 상고시대부터 통진현, 부, 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통의 마을이다. 옛 읍지의 지도에는 아사(衙舍)를 중심으로 그 북동편에 사직단(社稷壇), 즉 토지신과 곡신(穀津)에게 제사지내던 제단과 사창(司倉), 즉 관곡(官穀) 보관 창고, 그리고 서남쪽에 객사(客舍), 즉 임금의 영(令)을 받고 출장 오는 관원을 유숙시키는 숙박시설로 궐패(闕牌)를 모셔두던 곳과 여단(厲壇), 즉 여귀(厲鬼:제사를 못 받고 떠도는 원혼)를 제사하던 제단 등이 그려져 있으나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인들이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다 헐어 없앴을 것이다. 『김포군지』에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인조가 강화로 몽진하는 도중에 통진에서 정월 28, 29일 이틀간 머물면서 대신들과 국정(國政)을 논의한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옛 아사, 남산 봉수대(烽燧臺) 등 조상의 숨결이 서려 있던 유적들을 복원하여 문수산성과 함께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도시화하는 일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개발과 건설은 후대에도 가능하지만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 떠나면 복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지명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현존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본다.

한편, 군하 3리 곰배는 문화 유씨(文化柳氏), 합천 이씨(陜川李氏)가 선거인(先居人)으로 여러 대를 세거(世居)해 왔다고 한다. 방향으로 볼 때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 기록된 통진부 방리(方里) 중에서 서변리(西邊里)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곰배(곰바위·웅암리·웅암동·웅암)는 곰바위가 있는 마을을 뜻한다. 통진읍 서남쪽에는 곰바위(熊岩)라고 불리는 있는 큰 바위가 있다.

이 지역은 마을이름이 매우 정감이 가며 마을도 앞산에 막히기는 했으나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이름 자체는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인상을 갖게 하나 마을에는 내세울 유물·유적은 없다. 10년 만에 부자가 되어 떠나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생활에 불편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지도서

호구총수

(1789)

통진부읍지

(1842/1871)

통진읍지

(1899)

조선지지자료

(1911)

1914

행정개편

1983년

1998년 시승격

부내면

부내면(府內面)

-

군내면(郡內面)

군내면(郡內面)

월곶면

(月串面)

월곶면

(月串面)

월곶면

(月串面)

-

동변리(東邊里)

서변리(西邊里)

-

군하리(郡下里)

군하리(郡下里)

군하리

(郡下里)

군하리

(郡下里)

군하리

(郡下里)

고읍리(古邑里)

-

고읍리(古邑里)

(남살골)

고읍리(古邑里)

(남살골)

고막리

(古幕里)

고막리

(古幕里)

고막리

(古幕里)

-

-

초막동(草幕洞)

(치막꼴)

초막동(草幕洞)

(치막꼴)

-

-

갈산리(葛山里)

(갈미)

갈산리(葛山里)

(갈미)

갈산리

(葛山里)

갈산리

(葛山里)

갈산리

(葛山里)

고양포리(高陽浦里)

-

고양포리(고양지)

고양포리(고양지)

고양리

(高陽里)

고양리

(高陽里)

고양리(高陽里)

능동(陵洞)

-

능동(陵洞)

능동(陵洞)

포내리(浦內里)

-

포내리(浦內里)

포내리(浦內里)

포내리

(浦內里

포내리

(浦內里)

포내리

(浦內里)

보구곶면

보구곶면(甫口串面)

보구곶면

보곶면(甫串面)

포구곶면(浦口串面)

-

성내리(城內里)

-

성내리(城內里)

산성리(山城里)

성동리

(城東里)

성동리

(城東里)

성동리

(城東里)

동막리(東幕里)

-

동막리(東幕里)

동막리(東幕里)

보구곶리(甫口串里)

-

보곶리(甫串里)

보구곶리

(보십곳지)

보구곶리

(甫口串里)

보구곶리

(甫口串里)

보구곶리

(甫口串里)

흥룡리(興龍里)

-

흥룡리(興龍里)

흥룡리(興龍里)

(이기울)

용강리

(龍康里)

용강리

(龍康里)

용강리

(龍康里)

-

-

강령포(康寧浦)

강령포(康寧浦)

월여곶면

월여곶면(月餘串面)

월여곶면

월여곶면(月餘串面)

월여곶면(月餘串面)

조강리

(祖江里)

조강리

(祖江里)

조강리

(祖江里)

-

조강리(祖江里)

-

조강리(祖江里)

조강리(祖江里)

우을내리

(右乙內里)

-

울내리(蔚內里)

울내리(蔚內里)

(울안이)

-

-

개야리(開野里)

-

개곡리

(開谷里)

개곡리

(開谷里)

개곡리

(開谷里)

위곡리(位谷里)

-

위곡리(位谷里)

(가우르)

위곡리(位谷里)

(가오루)

-

-

조산현(鳥山縣)

조산현(鳥山縣)

(조산재)

부내면

부내면(府內面)

부내면

군내면(郡內面)

군내면(郡內面)

옹정리

(甕井里)

옹정리

(甕井里)

<통진면으로 이관>

 

-

옹정리(甕井里)

-

-

옹정리(甕井里)

신대리(新垈里)

-

신대리(新垈里)

월여곶면

월여곶면(月餘串面)

월여곶면

월여곶면

월여곶면(月餘串面)

-

서명동리(西明洞里)

-

서명동(西明洞)

(셔명골)

서명동(西明洞)

(서명골)

서암리

(西岩里)

서암리

(西岩里)

<통진면으로 이관>

 

 

-

검암리(黔岩里)

검암리(黔岩里)

(검바위)

고척산리(高尺山里)

-

고척산(高尺山)

고척산(고자메)

고정리

(高亭里)

고정리

(高亭里)

<통진면으로 이관>

남정동리(南亭洞里)

-

남정동(南亭洞)

남정동(南亭洞)

(남정골)

겁을전면

조을전면(造乙田面)

겁을전면

질전면(迭田面)

(질앗면)

질전면(迭田面)

귀전리

(歸田里)

귀전리

(歸田里)

<통진면으로 이관>

-

귀로리(歸老里)

-

귀로리(歸老里)

귀로리(歸老里)

조을전리(造乙田里)

-

질전리(迭田里)

질전리(迭田里)

(질앗)

동을산리(冬乙山里)

-

동을산(冬乙山)

동을산리(들미)

동을산리

(冬乙山里)

동을산리

<통진면으로 이관>

원통리(元通里)

-

원통리(元通里)

원통리(元通里)

등산리(登山里)

-

일부지역

등산리(登山里)

등산리(登山里)

동을산리

<통진면으로 이관>

양택리

(楊澤里)

<하성면으로 이관>

택동리(澤桐里)

-

일부지역

택동리(澤桐里)

택동(澤桐)

(슛못)

<표> 월곶면 법정명 변천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