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가난한 아들의 효도

부자는 살아계신 좋은 의복과 맛있는 음식으로 효도합니다. 돌아가시면 호화로운 장례를 치르고 산소를 크게 하고 매년 풍성한 제수로 효자임을 주위에 알립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부자흉내 냈다가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 거덜 날 것입니다.

김포평야가 아무리 넓고 이곳이 굶주린 사람이 없는 부자동네라 해도 가난한 사람은 있습니다. 월곶에서 머슴살이하는 정아무개 머슴. 나처럼 나이가 쉰 가까이 되도록 혼인도 못한 노총각이지요. 어머니는 어려서 돌아가셔서 기억도 나지 않고 병든 아버지를 몇십 년 동안 보살피느라 장가를 못 간 것입니다.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귀찮았을 텐데 정머슴은 타고난 효자라 정성껏 모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아버지를 묻고 곡(哭)을 하면서 제수음식도 차리지 못한 것을 한탄했습니다.

“아버지, 이 불효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평생 아버지 약값 대느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정머슴은 한을 풀기로 했습니다. 우선 주인에게 말해 휴가를 받고 동네 양반을 찾아가 ‘현고정씨부군신위(顯考鄭氏府君神位)’라고 지방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들고는 산소로 가서 절하고는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못난 아들이라 음식 한 접시 못 차려 드립니다. 그러니 저를 따라 장터로 가서 자시고 싶은 대로 실컷 잡수십시오.”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오듯이 조심조심 산에서 내려와 장터로 갔습니다. 떡집 앞으로 지날 때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 앞에서 지방을 받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인절미 떡 잡수세요. 그 옆의 계피떡도 드시고요. 냄새가 기가 막히는군요.”
한참 동안 그리하고는 이번에는 과일 집으로 갔습니다. 먹음직스러운 배 앞에서 말합니다.
“아버지, 떡 잡수셨으니 이번에는 입가심하셔야지요.”
마치 살아있는 분에게 하듯이 소곤소곤 말했습니다. 그다음에는 푸줏간 앞에 섰습니다.
“아버지, 생전에 잡숫고 싶었던 쇠고기입니다. 육회로 아시고 많이 드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웬 미친놈이 혼자서 중얼거리나 하던 행인도 효자의 마음을 알고는 감탄하며 갔습니다. 이번에는 어물전을 갔습니다. 밖에 내놓은 생선 앞에서 많이 드시라고 하는데 주인이 상해서 버리는 것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깜짝 놀란 정머슴이 방방 떠서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잘못 드셨습니다. 상한 생선이래요. 어서 토하십시오. 어서!”

이런 효자가 잘살아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병든 아버지 치료하느라 약값으로 돈을 다 썼으니 안타까운 노릇이지요. 재담을 마치고 주막을 들렀더니 뺑덕어멈이 뛰어나오며 반갑게 맞았다.
“혹부리! 삐졌어?”
나하고 동갑 나이인 뺑덕어멈은 염포교에게 일러바친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볼멘 목소리로 대꾸했습니다.

“뺑덕어멈, 내게 이럴 수 있어? 하마터면 포도청에 끌려갈 뻔했잖아.”
뺑덕어멈이 생글생글 웃습니다. 그리고는 진짜 알맹이는 쏙 빼고 말했는데 왜 그러냐고 했습니다. 내년에 왜놈의 군대가 쳐들어와 칠 년 동안 전쟁 끝에 쫓겨가고 삼백 년 뒤에야 조선을 멸망시킨다는 말은 누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눔의 원수 같은 술. 국밥 한 그릇 먹고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모처럼 먹은 술 때문에 탈이 난 것입니다.
뺑덕어멈이 눈웃음을 살살치며 유혹해도 외면하자 내 약점을 잡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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