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 영감의 김포 이야기

<17> 양반 제사

효(孝)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를 기리는 제사는 양반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민들도 제사를 지냈습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같으니까요. 하지만 제물은 검소했거니와 지내는 격식도 간단했습니다. 돈을 많이 번 평민은 양반이 부러웠습니다. 나랏법에 따르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평민은 큰 집에서 살 수 없었으니 양반처럼 제사를 지내서 돈의 위세를 보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양반식으로 제사지내려면 축문을 읽어야 하는데 주위에 어려운 한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선물을 싸들고 유초시를 찾아가 부탁합니다. 초시는 입이 함박만해져서 제사에 참석해서 축문을 읽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양반과 똑같이 제사를 지내고는 신분상승을 한 것처럼 흐뭇했습니다. 그날도 유초시는 아랫마을 김서방의 제사 축문을 쓰고는 하인에게 자시에 깨워달라고 하며 자리에 누웠습니다. 자시가 되어 주인 유초시를 깨우려 했지만, 깊은 잠이 들어 통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코를 골며 자던 초시가 깨어났을 때는 몇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아차, 김서방 제사에 가서 축문을 읽어주지 못해 낭패하는데 하인이 쑥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신 축문을 읽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런, 네가 한문으로 된 축문을 읽을 줄 알았던 말이냐?”
“암요, 축문 잘 읽었다고 한 상 잘 얻어먹었는데요.”
기가 막혀 축문을 읽어보라고 하자 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김세차~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눔아, 유세차지 김세차가 어디 있느냐?”
“주인어른은 유씨니 유세차이지만 김서방은 김가이니 김세차가 맞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김서방이 좋아했다고 하니 그냥 넘어갔습니다. 며칠 후에 부농인 평민 한 사람이 아버지의 제삿날을 맞아 제수 음식을 사 가지고 오다가 청천벼락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유초시가 집에 없다니 큰일이 난 것입니다.

“무엇이? 유초시 어른이 출타중이시라고? 그러면 축문은 누가 읽나?”
제사에 축문이 없으면 양반 제사가 모두 허사가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누군가 김진사님을 거론했습니다. 그러나 체신머리 없는 유초시와 달리 김진사는 점잖은 양반으로 평민들과 교유가 없으니 부탁을 들어줄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축문은 읽어야 하니 말이나 해보자고 찾아가 부탁을 했습니다. 양반을 뭘로 아냐고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는데 순순히 들어주니 신이 나서 제사준비를 했습니다. 드디어 제사 시간이 왔습니다. 목을 빼고 기다리는데 김진사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마루에 차린 제사상에 대고 냅다 외쳤습니다.

“개똥아, 잘 먹고 가거라!”
하고는 휙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축문도 읽지 않고 말입니다. 그러자 제사 지내는 개똥이 후손들은 분개했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에 따지러 가자고 벼르며 제사를 지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하인들이 김진사에게 따지러 가자고 하자 주인인 큰아들이 말합니다.

“광에 가서 굴비 한 두름 가져오너라. 김진사님께 고맙다고 인사하러 가야겠다.”
어젯밤에 분개했던 주인의 변심에 하인들은 놀랐습니다. 그러자 작은아들도 거듭니다.

“맞아, 나도 아침 꿈에 아버지가 김진사님께 인사하러 가라고 하셨어.”
형제가 동시에 꾼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말한 내용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아들 집에 찾아와 얻어먹는 제사였는데 그동안은 유초시가 와서 유세차~ 하며 어려운 한문으로 축문을 읽는 바람에 양반 위세가 두려워 문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진사가 양반 다 물리치고 잘 먹고 가라고 해주셨으니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갔다는 것입니다. 내용없이 형식만 따지는 제사를 풍자하는 이야기이지요.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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