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날
                          우대식

화롯불에 호박 된장국이 뉘엿뉘엿
졸아가던 겨울밤
육백을 치다가
짧게 썬 파와 깨소금을 얹은 간장에
창포묵을 찍어 먹던 어른들 옆에서
찢어낸 일력 뒷장에
한글을 열심히 썼던 먼 날
토방 쪽 창호문을 툭툭 치던 눈이 내리면
이젠 없는 먼 어머니는
고무신에 내린 눈을 털어
마루에 얹어 놓고
어둠과 흰 눈 아래를 돌돌 흐르던
얼지 않은 물소리 몇,
이제 돌아오지 않는 먼 밤
돌아갈 귀(歸) 한 글자를 생각하면
내 돌아갈 길이
겨울밤 창호문 열린 토방 한 구석임을
선뜻
알 것도 같다.

 

[프로필]
우대식 : 강원 원주, 시집[설산 국경]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외 다수
[시감상]
겨울의 옷자락이 길다. 눈이 내리고 도시가 회색빛에 온통 침습 당하면 문득 고향이 생각난다. 늘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유년의 시간은 꺼낼 때마다 변함이 없다. 때론 영롱한 빛으로 때론 잔뜩 묻은 그리움으로 어룽거리는 회한의 빛깔들. 살며 뒤안길을 되돌아볼 때 가장 먼저 눈에 차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그림자. 호롱불 아래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쓰던 일기, 숙제들 그 곁에 구멍 난  양말을 깁고 있는 침침한 달빛과 어머니. 세월 지나 다듬이 소리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의 겨울밤도 사라지고, 툇마루 섬돌 아래 아무렇게나 놓아둔 고무신 몇 켤레도 없다. 하지만 그 실종된 그리움의 끝에 여전히 선명한 실루엣, 고향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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