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효도도 꿍짝이 맞아야

최영찬 소설가
한 번의 말실수로 역모꾼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에게 열두 번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되새기며 대답했습니다.
“뺑덕어멈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기에 벌치기에게 들은 말을……”

어떻게 그런 임기응변이 발휘되었는지 모릅니다. 박꽃 주변의 꿀통에서 딴 꿀을 박여왕꿀이라고 둘러댔습니다. 그러자 염포교가 눈을 끔뻑끔뻑하며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벌치기는 전에는 농사를 졌다는군요. 한 마지기 논밖에 없는 가난뱅이였으나 홀아버지를 극진히 모셔 효자로 소문이 났습니다. 새로 원님이 부임했을 때입니다.”

원님은 효자를 불러 표창을 하고 불효자를 찾아내 엄하게 벌해 기강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붙잡혀 온 불효자에게 다짜고짜 곤장을 쳤습니다. 홀아비인 아버지를 잘못 모신 불효자라는 죄목이었습니다. 
“에구구, 에구구. 나으리. 잘못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없어 그런 것입니다.”

매를 맞으며 잘못을 비는 얼굴을 보니 험상궂게는 생겼지만, 본성이 악한 것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원님은 불효자가 배운 것이 없어 그런 것으로 판단하고 효자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고 명령을 내리고 풀어주었습니다.

“그날부터 불효자는 효자의 집으로 가서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효자의 아버지는 위장이 좋지 않아 트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미역국을 많이 먹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트림으로 고쳐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뺑덕어멈이 미역국을 잘 못 알아들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위가 나빠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에 염포교는 또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안면몰수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아침부터 관찰해보니 조반 먹을 때 아버지의 밥을 후후 불어 드리는 것과 자기 전에 이불에 들어가 한참 동안 눕는 것 이외에 다른 점은 없어 보였습니다. 후후 부는 것은 뜨거운 밥을 식히려는 것이고 이불에 든 것은 자신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효자에게서 효를 배운 불효자는 집에 와서 똑같이 했습니다. 염포교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불효자가 효자가 되었나?”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아버지는 아들을 냅다 발로 걷어차고는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답니다. 불효자인 아들이 이제는 밥에 입김을 불고 아비의 잠자리에 들어가 자빠져 잔다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포교는 의심의 눈초리에서 벗어나 다음 말을 재촉했습니다.

"불효자로 끌려가 매를 맞은 아들은 어이가 없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젠장! 효도도 꿍짝이 맞아야 하지라고요."
내가 이렇게 말을 끝내자 염라대왕이 제 팔을 덥석 잡는데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 이제 포도청에 끌려가 목이 잘리는구나.
"이보게. 풍문. 내가 그런 지경에 있다네."

염포교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살고 있는데 부부가 아무리 잘해 드려도 천하의 불효자라고 떠드는 바람에 난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들어보니 치매증세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이고 트럼프고 쏙 들어갔습니다. 나는 괴로워하는 염라대왕을 위로하고는 곧장 주막으로 갔습니다. 손님과 하하거리고 있던 뺑덕어멈은 나를 보더니 놀라 뒤로 자빠질 것 같은 시늉을 했습니다. 제가 미래를 예언한 역모죄로 포도청으로 끌려갈 줄 알았겠지요. 나는 모른 체하고 술상을 받았습니다. 뺑덕어멈은 염포교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하면서 아양을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밤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하며 나를 꼬였지만 깨끗이 거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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