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창수
민족사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이제 우리는 복잡한 것을 잊고 신인류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하자. 지금 서구 인류학계는 엄청난 고민에 휩싸여 있다. 신인류의 기원지가 중앙아시아 알타이 산맥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몰려 있다. 그렇게 때문에 스반테 파보가 이룩한 세기의 업적을 마치 별 것이 아닌 것처럼 저렇게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단편적인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간의 결합은 인류 역사상 중앙아시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단 한 번 발생했다. 당시 네안데르탈인들과 호모 사피엔스는 공생이 불가능한 이질적인 집단이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호모 사피엔스를 자신들과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들이 호모사피엔스를 잡아먹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곰·호랑이·사자 같은 맹수들도 굶어죽을지언정 자신들과 같은 종의 동물들을 잡아먹지 않는다. 네안데르탈인들이 호모 사피엔스를 같은 종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잡아먹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집단 간에 신혼살림이 꾸려졌으니 기적이다. 그래서 원동중의 《삼성기》는 “인류의 시조를 나반이라 하는데, 나반이아만을 만난 곳은 아이사타라는 곳으로, 꿈 속에서 하느님의 교화를 받아 혼례를 치루었는데 구환의 족속은 모두 이들의 후예이다”라고 서술했다.

나반과 아만의 만남을 하느님이 섭리한 기적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록은 네안데르탈인 나반과 호모 사피엔스 아만의 혼인을 노래한 인류사 최고의 서사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류 역사에서 인류의 시조를 서술한 기록물은 《삼성기》와 《구약성경》 밖에 없다. 공통점은 둘 다 인류의 탄생을 하느님이 섭리한 역사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너무나 뚜렷하다. 《삼성기》는 인류의 시조를 나반과 아만이라 하지 않고, 나반으로만 한정하고 있다. 이것이 핵심이고, 참 역사다. 네안데르탈인이었던 나반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비록 하나님의 뜻으로 호모 사피엔스 아만과 신방은 차렸지만 아만을 자신과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삼성기》는 인류의 시조를 어머니 나반으로 한정했던 것이다.

이것은 모계통치사회의 출현을 의미한다.《구약성경》은 아담과 하와 이후 부계 중심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필자는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성경》에서 이것만큼은 명백한 허구다. 《구약성경》에 허구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카톨릭과 기독교가 시도 때도 없이 인문학의 목을 조였고, 그 바람에 인문학은 산송장처럼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필자는 신인류가 탄생한 이후 수만 년 동안 모계통치사회가 지속된 역사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미국의 유전·인류 학자인 스펜서 웰스는 2002년 출간한 《인류의 여정 :유전학 오디세이(원제, The Joumey of MAN : A Genetic Odyssey)》에서 “Y염색체 추적의 결과 인류 남성 모두의 조상은 6만 ~ 9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아담이다”라고 주장하여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은 사실이 있다. 필자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스펜서 웰스의 연구 결과가 타당하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삼성기》의 나반은 네안데르탈인 여성일 수밖에 없다. 아만이 호모 사피엔스 남성이었던 것이다. 만약 신인류의 조상 중 네안데르탈인 쪽이 남성이었다면 스펜서 웰스의 연구는 잘못된 것이 된다.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20만 년 전에 유라시아 대륙에 등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7만 3500년 전 토바산 화산 폭발로 아프리카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모두 멸종했다. 그리고 5만∼6만 5000년전에 아프리카에서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해안에 도착한 후 해안선을 따라 다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