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광식
김포대 총동문회장,전 파독광부협회 회장,
전 경기도의원
얼마 전에 김포신문에 졸고 ‘할아버지의 손녀사랑’이 나간 후 주변의 많은 분들이 손녀에 대한 조부의 깊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친밀함이 가슴으로 느껴졌노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러면서 수년 전부터 중요시되고 있는 격대(隔代)교육에 대한 생각을 한 번 피력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있었다. 마침 지난해에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발간한 “노인이 스승이다 - 왜 지금 격대교육인가”라는 책을 구입해서 보고 있던 터라 그 책을 읽으면서 크게 느꼈던 점과 복기하고 싶은 사항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격대교육은 조부모가 손자녀에게 친근한 정서에 바탕을 둔 인성교육을 행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조손(祖孫)교육을 일컬으며, 나아가 가정교육(부모교육)과 학교교육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도로 산업화되고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 현대사회에서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가족구조가 핵가족화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데 대체로 지적되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1)가족구성원을 통제하기 힘들다 (2)사람 사는 도리를 가르치기 힘든 아버지 (3)잔소리꾼이 된 어머니 (4)갈등을 조절하는 장치가 빈약하다 (5)아동을 보호하고 노약자를 부양하기 힘들다 (6)정서적 안정을 제공하기 힘들다 (7)가족의식이 세속화 된다 (8)가족해체가 빠르게 진행된다. 핵가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오늘날 한국 가족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삶을 안정되게 하고 전체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개인으로 분해되어 해체위기에 놓인 가족공동체를 새롭게 복원하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사랑이 충만한 가족, 끈끈한 정으로 뭉쳐진 가족을 만들어 가는데 조부모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친할아버지·친할머니와 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핵가족화된 사회에서는 친족관계가 친가와 외가를 구분하지 않고 양가와 대등하게 교류하는 양계적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족공동체의 복원을 위한 할아버지·할머니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단절된 가족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둘째, 약화된 부모의 자녀훈육기능을 보완할 수 있다. 셋째, 갈등을 예방하고 조절할 수 있다. 넷째, 맞벌이 부부의 육아기능을 지원할 수 있다. 다섯째, 노인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된다. 특히 격대교육을 통해 자연히 노인의 위상도 올라가고 가정도 화목하며 건전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다가 고독과 홀대, 무료함 등의 노인문제도 많은 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점은 노인을 공경하는 풍토, 곧 경로정신을 음미하고 재확립해야 한다고 한다. 윤용섭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이 짚어 본 경로의 9가지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보은지경(報恩之敬)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경로사상의 근거로 후세대가 노인들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공경이다. 둘째, 보공지경(報功之敬)이다. 노인들이 사회유지와 발전을 위해 쌓아온 공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여주듯 나 또한 파독광부로서 어두운 탄광에서 주말 없이 뼈 빠지게 죽음을 무릅쓰고 일했으며, 그 결과 최빈국에서 벗어났고 젊은 후손들에게 이마만큼이라도 풍요로운 나라를 물려주었다. 셋째, 존선지경(尊先之敬)으로 인생의 선배에 대한 존경이다. 넷째, 전승지경(傳承之敬)으로 노인이 우리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공경이다. 다섯째, 경륜지경(經綸之敬)으로 노인네들이 지닌 경험과 지식에 대한 경의다. 여섯째, 연덕지경(硏德之敬)으로 세월의 연마가 이루는 작품, 노인의 성숙한 인격에 대한 공경이다. 일곱째, 인간지경(人間之敬)으로 인간의 존엄성에 경의를 표하는 입장에서 늙은이라는 인간 그 자체를 공경하는 것이다. 여덟째, 세수지경(世壽之敬)으로 문자 그대로 '세상을 오래 살았음'에 대한 공경이다. 아홉째, 자경지경(自敬之敬), 즉 나 자신에 대한 공경이다. 노인의 모습은 미래의 내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에 대한 공경과 선행은 바로 나 자신을 공경하고 아끼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족관계의 중심에 서고 손자녀들의 양육과 교육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도 있다. 우선 변화된 새로운 사회문화를 수용하여 자녀가 손자녀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음은 자녀나 손자녀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바탕위에서 자녀나 손자녀의 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간섭하는 일은 삼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의 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하며, 한 발 뒤에서 관조하는 여유를 가진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현대사회의 가족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가족공동체를 새롭게 복원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뒤돌아보면 조부모의 무릎에 누워서 들었던 그 많은 옛날이야기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큰 지혜와 힘이 되었던가! 참으로 노인이 이 세상의 가장 좋은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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