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최영찬
오늘도 재담꾼인 저는 감암포를 향했습니다. 어젯밤 밤새도록 아버지가 남겨준 민담집을 들여다보며 암송했습니다. 으로 중얼거리는 것이 끝나자 새벽에 꿈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백 년 후에 백성이 여왕을 뽑아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본 텔레비전에서는 다른 여자가 뒤에서 조종했다고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순실? 미실이 아니고 순실?”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비록 꿈속에 몇 장면 보지 않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라는 탤런트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그 미실대신 순실을 보았던 것입니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영화와 드라마를 말하고 싶지만…… 이 선조 대왕 시대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벙어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제가 나타나자 미루나무 밑에 서 있던 뱃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슬픔을 지니고 살지만, 민담을 통해 재미와 함께 인생교훈을 들려준다 생각하니 보람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순식간에 감암포 사람들이 모입니다. 방금 배에서 내린 손님들도 고개를 삐죽 내밀고 나를 바라봅니다. 스포트라이트 아니 군중의 시선이 모이니 우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습니다. 옛날 옛적 김포에서로 시작됩니다.
김포의 어느 부자는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그 말은 큰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고기 음식을 먹으며 가끔 떵떵 장고도 치며 즐기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으니 자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다가 그만 죽었으니 대를 이어 제사 지내 줄 양아들을 가문에서 구해야 했습니다. 지금 지내는 대상(大喪)도 그 양아들이 지내는 것입니다. 제사를 막 지내려는데 안주인이 갑자기 졸음이 쏟아집니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고개가 꺾이자 안방으로 들어가 베개를 베었습니다. 그때 죽은 남편이 친척 동생의 뒤를 따라 마루에 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제사상 위패가 놓인 자리에 턱앉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귀퉁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습니다. 제주인 양아들이 술잔을 올리자 생부인 친척이 덥석받아 들이켰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잔도 들이켰습니다. 귀퉁이에 앉은 남편은 입맛만 있었습니다. 세 번째 잔을 받아든 친척은 옆을 흘끔 보더니 술잔을 남편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대꾸했습니다.
“내가 받아먹을 곳은 따로 있다네.”
하며 마루를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안주인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장옷을 걸치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어느 집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조촐한 제사상 앞에 꼬마 아이와 젊은 여자가 앉아 절을 했습니다. 양아들이 올리는 술잔을 생부에게 빼앗긴 남편은 꼬마가 올리는 술을 맛있게 마시고는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에 안주인은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급히 가마를 불렀습니다. 느닷없는 행동에 집안 식구들은 놀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길을 재촉했습니다. 꿈에서 본 길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에 반 시각 만에 남편이 들어간 초가집에 도착했습니다. 모자가 제사를 마치고 치우던 중에 안주인이 나타나자 놀랐습니다. 아 아이는 누구냐고 묻자 젊은 아낙은 눈물을 흘리며 사실을 말했습니다. 자신은 소작농의 딸로 부모를 잃고 끼니를 걱정할 정도가 되었는데 마름의 소개로 부자를 모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비밀리에 두 집 살림을 한 것입니다. 몇 달에 한 번 묵고 갔는데 그때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안주인은 집으로 돌아와 양아들을 돌려보내고 모자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제삿날 자신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게 한 것은 숨어 사는 모자를 구하려는 남편의 뜻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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