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포구

                                   이기은

서해 바다가 높새바람에 실려 와
새하얀 캔버스로 누운
대명포구엔
만선의 꿈을 빼앗긴 낡은 배 한 척
개펄에 퍼질러 앉아 몽유병을 앓고 있다
귀향길 잊을까 장승이 되어 누운
짜디짠 바닷바람 몽니에 바스러진 목선
드난살이 갈피마다 절인 설움
잊힐 수 없는 기억으로 고스란히 담은 채
올올이 설움 풀어 달빛에 말린다
배고픈 갈매기 섧디섧게 울던
염하 탁수엔 전설이 푸르고
초지대교 난간엔 젊은 날의 무용담만
폐선의 허물인양 늘어져
장화리로 지는 붉은 해를 배웅하고 섰다.

[프로필]
이기은 : 독도 시 공모전 대상, 시집[자귀나무 향기][별밤에 쓰는 편지]외 다수
[시감상]
엊그제 상강이었다. 24절기 중 열여덟 번째 절기,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
을 상강이라고 한다. 상강 무렵이면 추수가 마무리된다. 그 자리에 빈 들판이 남아 겨울을 손짓할
것이다. 김포시 대곶면 끝자락에 포구가 있다. 포구 옆에 낡은 배 한 척이 멈춰있다. 그가 달리던
파도와 바다는 조용하게 그를 지켜보고 있다. 살다 보면 어느 한때 우린 잠시 멈추게 된다. 회한과
기억과 젊은 날의 무용담도 같이 멈춰 있을 것이다. 삶의 노곤함과 함께 고즈넉한 여유는 휴식이
다. 멀리 붉은 해를 배웅하는 시인의 눈길이 아슴하게 멀다. 겨울지나 봄이 오면 다시 파도와 싸울
그때를 위하여 잠시 멈춘 포구의 정경이 그윽하다<.글 :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