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는 평야 지대라 땅 부자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태어났을 때부터 먹고사는 것이 전혀 걱정이 없는 ‘금수저’가 있었습니다. 땅이 요즘의 주식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꼬박꼬박 소작료가 들어와 신경 쓸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다 성격이 도박이나 여색도 탐하지 않으니 유일한 낙은 술 마시는 것뿐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어른들이 장난으로 술을 먹여 술 맛을 배운 이후로 낮이나 밤이나 술을 마셨습니다.

“술, 술을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 아니, 죽기 전에 술을 마음껏 먹다 죽자!”

비장한 결의로 전국의 명주란 명주는 모두 사들여 술맛을 음미했습니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 마실 때도 있지만 주로 혼자 마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좋은 술을 보아 기분 좋다고 한 잔, 술맛이 없어 보여 울적하다고 한 잔, 마누라가 술 좀 그만 마시라고 바가지 긁었다고 화나서 한 잔, 의원이 술 많이 마시면 병난다고 했다고 슬퍼서 한 잔 이렇게 갖가지 핑계를 대고 마셔 온종일 술에 취했습니다. 그럼에도 고혈압 같은 성인병도 걸리지 않고 수십 년을 버텨 왔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입니다. 술을 당뇨병 환자 물마시듯이 벌컥벌컥 들이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병석에 드러눕게 된 것입니다. 소문난 의원들이 진찰했지만, 병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술을 많이 마셔서 얻은 ‘술병’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드러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그간의 삶을 돌이켜보니 온종일 술 마시며 해롱거린 기억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뭐가 안에 있다!”

술꾼이 이렇게 외치며 목을 부여잡았습니다. 놀란 아내와 자식들이 앉히고는 등을 내려치니 뻘건 살덩이를 토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더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변한 것은 그 좋아하던 술을 냄새도 맡기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딱 한 잔만 하라고 권해도 머리를 설레설레 내젓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술꾼이 토해낸 살덩이가 신기해서 햇볕에 말렸습니다. 남편의 몸에서 나온 것이니 바짝 말려 잘 보관하려는 것입니다. 그때 한양으로 중국사신이 왔는데 풍수지리, 천문, 망기(기운을 보는 능력) 등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뭔가 귀한 것이 있으면 사가지고 가려고 삼천금을 싸들고 왔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습니다. 인삼 빼고는 중국에 다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작긴 하지만 기이한 것을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 아닌 모양이군.”

사신은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 천문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뭔가 서기가 하늘로 뻗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누군가 귀한 보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얼른 사람을 불러 서기가 뻗치는 곳으로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중국 사신이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이 김포의 부잣집이었습니다.

“여봐라! 대문을 열어라. 귀인이 오셨다!”

사람들이 놀라 일어나 허겁지겁 사신을 맞으니 다짜고짜 지닌 보배를 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골동품과 서화를 내놓았으나 고개를 젓더니 지붕 위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술꾼께서 토해낸 그 살덩이 말입니다. 사신이 준비한 삼천 금을 넘겨주며 간절히 부탁하니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사신은 살덩이를 지니고 한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술의 정기라는 것이네.”

작은 독에 물을 가득 채우고 살덩이를 휘젓자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술로 변했습니다. 술꾼이 평생 술을 마시며 단련 했기에 그것이 뭉쳐 정기(精氣)가 된 것이었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간 사신은 잔치 때마다 이렇게 물을 술로 바꾸어 나눠 마셨습니다. 이 ‘술의 정기’는 오랫동안 가문의 보배였는데 전란이 벌어졌을 때 분실해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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