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요즘은 하루에 두 시간씩 텃밭의 풀을 뽑습니다. 기온이 따뜻한 지방이라 온갖 풀들이 겨울에도 무성하게 자라거든요.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잡초가 빽빽합니다. 풀을 뽑으면서 생각해보니 땅이 풀들을 통해 숨을 쉬는 것 같아요. 잡초라지만 나물을 만들면 음식이 되고 토끼에게 주면 식량이 되는 식물들이지요. 몰라서 그렇지 약초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상한 것은 양파를 몇 고랑 심어 놓았는데 빈 땅에는 그렇게 많은 풀들이 자라는데도 양파가 자라는 곳에는 풀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양파를 경작하는 곳에는 풀들이 일부러 자리를 내어 준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양파는 비닐도 씌우지 않고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밭에 비하면 작고 초라합니다. 그렇게 자란 양파는 수확은 별 것 아니지만 맛이 좋고 단단해서 잘 썩지 않아요. 냉이와 광대나물은 벌써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있어요. 괴불주머니 같은 꽃을 피운다고 해서 개불딱지라고 불리는 식물은 보라색 꽃이 얼마나 예쁜지 관상용으로 키워도 좋을 것 같아요.
풀도 제각기 나오는 시기가 달라요. 꽃과 씨앗을 매달고 있는 풀들 사이로 한삼 덩굴과 명아주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어요. 명아주는 어릴 때 나물을 만들어 먹어도 좋을 만큼 부드러운 풀이지만 다 자라면 나무처럼 크고 단단해서 지팡이도 만들 수 있는 풀이에요. 한삼 덩굴은 가시 투성이의 탱자나무도 휘어 감을 정도로 생명력이 왕성한 식물입니다. 줄기와 이파리에 껄끄러운 털이 붙어 있어서 손으로 잡으면 따갑지요. 이곳에서 부르는 그 풀의 별명은 며느리 밑씻개랍니다.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그런 풀에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웃음이 나와요. 한삼 덩굴의 왕성한 생명력과 명아주의 생장 능력을 채소나 곡물과 접목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잡초는 곤충들의 온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동면에 든 곤충들은 잡초의 이파리나 뿌리에 붙어 겨울을 나지요.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것 같은 잡초가 곤충들의 온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동면에 든 곤충들은 잡초의 아파리나 뿌리에 붙어 겨울을 나지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잡초가 곤충들에게는 낙원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이제 제가 빈 밭을 매고 있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요. 처음에는 제초제를 뿌리지 힘들게 왜 풀을 뽑느냐, 갈아엎으면 다 죽는데 무엇 때문에 풀을 뽑느냐 간섭이 많았지요. 지금의 시골은, 제초제가 환경에 얼마나 나쁜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편리한 쪽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도 해요. 시골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야 힘없는 노인들뿐이니 환경을 앞세워서 힘든 노동을 한다는 건 무리거든요. 마을 사람들은 이제 제가 빈 밭을 매고 있어도 그러려니 해요.
어느 한때, 저는 절대로 잡초처럼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인이 되어 도대체 인간이 왜 지구에 남아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번민하고 방황한 적이 있었지요. 삶과 인생에 대한 회의라고도 할 수 있고, 자아니 철학이니 하는 것에 눈을 뜨게 된 시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 무렵에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버린 아버지가 딱 한번 저에게 편지를 했는데, 저는 잡초라고 했어요. 그때는 그 말이 저를 향한 아버지의 저주라고 생각했지요. 잡초라는 아버지의 말은 저에게 필요악으로 작용했습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오기로 잡초처럼 일어섰습니다. 그러면서 다짐했어요. 절대로 잡초처럼 평범하게 살지 않겠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평범함 속에서 범상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결코 범상하게 살아오지 못한 저는 잡초를 뽑으며 잡초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생각합니다. 잡초는 식물의 기초 단위인 동시에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는 곤충을 키워내는 존재입니다. 잡초처럼 평범한 인생이 나쁠 것은 없지요. 오히려 잡초의 정신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해가 지면서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저는 토끼에게 주려고 여우팥을 한아름 뽑아들고 일어섰어요. 어느새 소쩍새가 자연의 노래를 불러줍니다. 시골에는 도시와는 다른 생태 시계가 있습니다. 해의 길이에 따라 들고나는 시간이 조정되니까요. 이곳 사람들은 들에 나가는 것을 들 든다고 하고, 들에서 집에 돌아오는 것을 들 난다고 해요. 나들이라는 말은 집에서 들로 나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일컫는 말인 것 같아요.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마늘밭 김을 매던 이웃집 아낙이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저는 이제 들 나요?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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