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큰딸이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해요. 봄 소풍은 참으로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행사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고향 마을 주변에는 돌산과 흙산이 있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날을 잡아 봄에는 흙산으로 소풍가고 가을에는 돌산으로 소풍을 갔지요. 봄 소풍은 4월 초파일이고 가을 소풍은 추석 다음날이었어요. 인근 마을 남녀 노소들이 모두 모여 산을 올라갔어요. 오락이 귀한 시절이었으니까 마을 소풍은 의미 있는 이벤트인 셈이었지요. 그다지 높지 않은 흙산에는 호랑이 바위도 있었고, 돌산에는 장수 바위도 있었어요. 사람들은 산에 올라 먹을 것을 나눠 먹으며 풍악 놀이를 했어요.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시대였지만 인정만은 풍족한 시절이었지요. 지금은 돌산과 흙산이 채석장으로 변해 호랑이 바위와 장수바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산이 있던 자리는 지하 깊숙이 울리는 굴삭기 소리로만 존재합니다.
요즘 아이들도 소풍이 주는 설렘을 알까요? 아이들의 설렘이 어느 만큼인지 모르는 저는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합니다. 진달래와 배추꽃으로 화전을 만들고 김밥을 준비해요. 저는 김밥을 일부러 복잡한 공정을 거쳐 만들지요. 밥은 찹쌀을 시루에 쪄서 사용하기도 하고 압력솥에 밥을 지을 때는 맵쌀에 찹쌀을 섞어요. 재료들이야 시장에서 파는 것을 이용하니까 특별할 것은 없지요. 그래도 조금 다른 김밥을 만들고 싶어서 제가 고안해 낸 방법은 지단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사각 팬에 지단을 붙여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지요. 김 위에 밥을 펼쳐놓고 밥을 펼친 면적보다 조금 작은 면적으로 지단을 펼칩니다. 제 생각으로는 밥에 단무지가 닿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밥과 단무지 사이에 지단을 넣어 분리하는 것입니다. 햄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끓는 물에 데치고 오이는 반으로 잘라 껍질 벗기고 티스푼으로 속을 파냅니다. 그렇게 김밥을 만들면 지단이 들어갔기 때문에 뚱뚱한 김밥이 됩니다. 김밥은 넉넉한 양을 만듭니다. 제 김밥을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미 소풍을 다녀온 막내까지 급식소에서 친구들과 나눠먹을 것이라며 김밥을 챙깁니다.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챙겨 보내고 세탁기를 돌리며 제 김밥을 좋아하는 뒷집 할머니에게 전화를 합니다. 뒷집 할머니는 눈을 비비며 들어옵니다. 혼자 사는 뒷집 할머니는 대부분의 아침을 거르지만 제가 청하지 않으면 토라질 정도로 제 김밥을 좋아합니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가 모자라는 잠 보충하라며 서둘러 나갑니다. 날이 무척 화창합니다. 저는 휘파람을 불며 빨래를 널고 하루치의 잠을 자기 위해 침실로 들어갑니다.
우편 배달부의 오토바이 소리에 세 마리의 개들이 소란스럽게 짖어 댑니다. 개들의 소란에 잠이 깨어 머리를 빗고 있는데 은행나무집 며느리가 들어옵니다. 저는 그녀에게도 김밥을 내어줍니다. 김밥을 달게 먹는 그녀의 하이 소프라노 웃음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마당에는 그녀가 들판에서 베어온 미나리가 손수레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저는 모자를 쓰고 마당으로 나가 미나리를 다듬었습니다. 미나리를 얻은 대가로 은행나무 집 며느리에게 미나리 데치는 법을 가르쳐 줬어요. 미나리는 오래 데치면 질기지요. 미나리를 잘 씻은 다음 넓은 그릇에 담아놓고 끓는 물을 부으면 연하게 데쳐져요. 찬물에 여러 번 헹구면 아삭아삭하고 향기도 오래 갑니다. 오늘 저녁에는 미나리를 초고추장에 버무려 식탁에 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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