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휴일 늦잠에서 깨어 보니 남편의 자리가 비어 있어요. 아마 저수지로 낚시하러 간 모양이에요. 마루로 나왔어요. 아이들은 1주일분의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잠들었는지 조용하더군요.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제빵기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나옵니다. 남편이 식구들 깨어나면 먹으라고 빵 반죽을 넣어두고 나간 것 같아요. 빵이 익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끓였어요.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빵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비닐봉지에 담았어요. 큰딸은 꿈나라 여행이 한창이고 막내는 엄마가 무얼 하나 고개를 내밀어요. 막내를 데리고 저수지로 향했어요. 우리 마을 저수지는 땅에서 솟는 용천에서 발원합니다.
조그만 샘에서 저수지 가득 넘치도록 맑은 물이 새어 나온다고 생각하니 참 신기해요. 저수지 아래 조그만 다리가 있어요. 물이 떨어질 때 햇살을 받아 무지개가 피어난다고 해서 이곳 방언으로 무적거리라고 합니다. 무지개 다리 아래 올챙이와 송사리가 헤엄치고 다녀요. 우렁이도 수초를 붙어 입을 벌리고 있어요. 막내는 벌써 저수지 둑으로 뛰어올라 아빠를 외칩니다. 남편은 바람을 피해 우묵하게 패인 둑 밑에 낚싯대를 차려놓고 물을 지켜보고 있어요. 저수지 주변에 승용차가 몇 대 서 있고 파라솔을 펼쳐놓고 쭈그려 앉은 낚시꾼도 여럿 있어요. 땅 밑에서 솟는 깨끗한 물에 참붕어가 산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단골로 이 저수지를 찾아오지요.
저수지에 나온 지 세 시간쯤 되었다는 남편은 앞에 놓은 물통에 다섯 마리의 붕어를 가두고 있어요. 둑 위에 앉아 빵과 커피를 꺼내 놓았어요. 남편은 빵을 먹는 시간도 아까운지 물살에 흔들리는 찌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막내가 내미는 빵을 입으로 받아먹어요. 빵을 먹는 도중에도 낚시에 붕어가 올라옵니다. 남편은 우리가 오니까 낚시가 잘 된다고 말해줍니다.
낚시 바늘에 지렁이를 끼우고 던졌다 당기기를 반복하는 남편을 지켜보다 심심해서 막내와 함께 저수지 옆에 있는 야산으로 올라갔어요. 저수지 옆에 있는 산등성이에는 3년 전에 돌아가신 뒷집 할아버지의 무덤이 있어요. 평소 머리가 벗겨졌던 할아버지의 봉분은 잔디가 알맞게 자라고 있어요. 무덤 주변에 일렬로 서 있는 황금 편백은 요즘 젊은이들 머리처럼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무덤을 지나 버드나무처럼 꽃술을 늘이고 있는 참나무 군락을 지나갔어요. 산자락은 죽은 억새 줄기들이 바람결에 따라 제 나름대로 노래하고 춤춥니다. 오솔길을 따라 걷던 막내가 걸음을 멈추고 앙증맞게 피어난 보라색 꽃 앞에 쭈그려 앉습니다. 제비 붓꽃이에요. 제비 붓꽃 주변으로 더 작고 가녀린 제비꽃들이 피어 있어요. 저긴 공동 묘지란다. 제가 후미진 골짜기에 이어진 공동 묘지를 손으로 가리켰어요. 막내는 무섭다며 오솔길을 따라 저수지 둑을 달려 갑니다. 저수지 둑에 하얀 민들레가 하늘하늘 피어 있습니다. 막내는 하얀 민들레가 노란 민들레의 돌연변이 일 것이라고 말해요. 엄마! 저기는 진달래 섬 같아요. 막내가 저수지 건너편 능선을 손으로 가리킵니다. 아닌게 아니라 산 전체가 만개한 진달래꽃으로 인해 활활 불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막내를 따라 진달래 피어난 산으로 달려갔어요. 좀처럼 낚시질을 그만둘 것 같지 않던 남편이 낚시 가방을 둘러메고 우리 곁으로 옵니다. 빗물에 패어 시뻘건 허리를 드러내고 있는 황톳길을 따라 진달래 어우러진 산길을 걸었어요. 어디에선가 진달래 축제가 한창이라지만 우리 동네 뒷산에도 진달래가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아요. 진달래가 피어나면 고사리도 나오게 마련이지요. 남편이 길섶에서 딴 고사리를 주먹 가득 쥐고 있어요. 진달래는 얼른 보면 한가지 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예요. 큰 꽃, 작은 꽃, 짙은 색, 옅은 색, 중간색, 제 나름대로 피어난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들고 대나무 오솔길을 걸었어요. 마을 뒤쪽을 돌아 나오다 보니 우리 집 뒤곁에 피어 있는 자두나무 하얀 꽃과 배나무 하얀 꽃이 눈에 띄게 예뻐요. 어느새 꽃향기를 타고 모여든 벌들이 자두나무와 배나무 주변에 넘쳐납니다. 어제 내린 비로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습니다.
토방에 앉아 운동화 끈을 풀며 저는 무지개 다리 밑에 피어나는 무지개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적거리의 무지개는 전설 속에만 있는 것일까요? 남편이 붕어를 손질해서 냄비에 담아들고 주방으로 들어갑니다. 저와 남편은 이곳에 살면서 붕어찜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가를 알았어요. 손질한 붕어는 냄비에 담겨서도 펄쩍펄쩍 뛰어요.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죽지 않은 붕어에 고춧가루와 간장을 뿌려 손으로 냄비 뚜껑을 누르고 소란이 멎기를 기다립니다. 그런 다음 냄비 바닥에 무를 두껍게 깔고 그 위에 붕어를 담고 고추장 양념해서 작은 불에 오래 조리면 정말 맛있는 붕어찜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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