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밤을 꼬박 새우고 오전에 잠자는 버릇이 있는 제가 오늘 아침에는 오전에 깨어났습니다. 마을 울력이 있는 날이에요. 추위에 얼었다 녹으면서 무너진 마을길을 보수하는 작업을 하기로 한 날이지요. 남편은 삽을 들고 먼저 작업하는 곳으로 갔어요. 저도, 고개라도 끄덕여줄 요량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마침 휴일이어서 고향에 다니러 온 젊은이들이 보입니다. 최고 연장자인 은행나무 집 할머니의 생신이어서 그 집의 자손들이 많이 모였서요. 한식을 맞아 성묘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요. 모처럼 마을이 웅성거립니다.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공기가 좋다며 이곳에 눌러 앉은 추리작가가 새참을 내어 오고 생일잔치를 치른 집에서 떡과 고기를 내어 옵니다. 작은 공사지만 나름대로 공법이 있는 것 같아요. 축대를 쌓고 자갈로 무너진 곳을 메운 다음 시멘트를 비벼 칠하고 도랑도 보수하더군요. 일하는 것을 구경하다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왔어요.
앞산 중턱에 점점이 붉은 물이 번지기 시작했어요. 우리 마을에도 진달래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막내를 데리고 저수지를 돌아 뒷산으로 갔어요. 뒷산에는 진달래나무가 어찌나 많은지 마구 뒹굴어도 흙이 묻지 않을 것 같아요. 진달래는 아직 만개하지 않았습니다. 봄 가뭄이 심해 꽃이 가지 끝에 힘없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아요.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들고 집에 돌아와 항아리 모양의 화병에 꽂았습니다. 집 안에 화사한 봄기운이 가득 차는 것 같아요.
진달래 꽃잎을 따서 화전을 만들었어요. 화전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화전의 재료가 되는 것도 여러 가지지만 화전을 지지는 방법도 그래요. 전병처럼 넓게 펴서 꽃을 여러 송이 올려놓고 지지다가 팥소를 넣어 돌돌 마는 방법도 있고, 반죽을 되직하게 만들어서 손으로 빚어 꽃을 올려놓는 방법도 있지요. 음식도 만드는 사람의 편리에 따라 변화하는 것 같아요. 저는 찹쌀을 물에 불리지 않고 생쌀에 넣어두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면 편리한 것 같더군요. 찹쌀가루는 김치 담글때 죽을 쑤어 사용하기도 하지요. 제가 화전을 만들기 위한 공정은 간단합니다. 먼저 찹쌀가루를 몇 숟갈 양푼에 담고 굵은 소금을 넣어 간을 하지요. 묽지도 되지도 않게 반죽을 해서 계란 흰자를 약간 섞어요. 그렇게 하면 찹쌀의 달라붙는 성질을 완화하면서도 맛이나 색깔은 변하지 않거든요. 숟가락으로 반죽을 떠서 진달래꽃 하나 넓이만큼 동그랗게 만듭니다. 그 위에 꽃술을 떼어낸 진달래를 얹고 앞뒤로 지지면 화전이 완성됩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함께 화전을 먹고 있다가 두 분의 손님을 맞았습니다. 한분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수필가인데, 사철 생활한복을 입고 비녀 꽃은 모습이 옛날 새색시 같아요. 그분이 우리 집을 자랑해서 목포 대학에 계시는 교수님 한 분을 모시고 왔어요. 그 교수님은 전국에 있는 은자들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 분이 찾는 은자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요. 화전에 국화주와 동백 부각, 일곱 가지 한약재를 넣어 끓인, 제가 칠보 차라고 이름 붙인 차를 내어놓았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밖에 나가서 텃밭을 구경했어요. 중문학과 교수인 그분은 중국에서 향채라고 불리는 고수를 캐어다 심고 싶다고 했습니다. 고수를 캐어 비닐봉지에 담고 그분의 제안으로 그리 멀지 않은 마을로 갔습니다. 그 교수님의 고향이 이곳이라고 합니다. 고향에는 배나무 과수원을 하는 부모님이 살고 게시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 보니 150평짜리 텃밭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땅에 배나무가 있고 많은 유실수와 꽃나무와 약초가 있더군요. 주눅이 들었어요. 그곳에서 정성스레 우려 주는 녹차를 마시고 집에 돌아와 향긋한 국화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오늘 만난 사람들의 향기가 제 가슴속에 잔잔히 배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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