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새벽 이른 시간, 조용한 대기를 뚫고 피리새 소리가 들려옵니다. 피리새는 이른 봄에 잠시 우리 마을 공중을 배회하다 어느새 사라지곤 하지요. 피리새는 새벽3시에 5시 사이에 휙휙 피리 부는 소리를 내며 마을 창공을 종횡 무진합니다. 곤한 잠에 빠져 있던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를 싫어해요. 단잠을 깨우는 것도 물론 귀찮은 일이겠지만 조용한 밤이 휙 휙 불어대는 소리를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밤중에 휙 휙 부는 피리 소리를 혹 귀신이라도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밤에 휘파람을 부는 것은 뱀을 부르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때 막 휘파람 소리를 내기 위해 열심이었거든요. 제가 휘파람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니를 따라 극장의 쇼프로를 구경하게 된 뒤부터였습니다. 그때는, 지금으로 말하면 콘서트 같은 것을 극장에서 구경할 수 있었거든요. 무슨 가요 쇼라거나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는 쇼가 읍내에 들어오면 온통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때지요. 제게는 7살 연상의 언니가 있는데, 쇼 구경을 가려면 밤길에 위험하다는 어른들의 걱정을 듣게 마련이었죠. 그래서 언니가 궁리해낸 꾀가 저를 데리고 가는 것이었어요. 어린 제가 언니의 보호자가 될 수도 없었을 텐데 어른들은 언니가 저를 동반하고 극장 구경하는 것을 허락했거든요. 언니를 따라 처음 가 본 극장에서 저는 가수의 열창이 끝날 때마다 퍼부어지는 휘파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요즘은 가수의 이름이나 오빠라는 말을 연호하며 환호를 보내지만 그 시절에는 휘파람 소리가 환호성이었지요. 피리 소리를 내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답니다. 휘파람은 들숨과 날숨을 이용해서 내면 되지만 피리 소리는 엄지와 검지로 아랫입술을 잡고 숨을 들이키며 내야 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쉽지 않았어요. 그렇게 휘파람과 피리소리를 내기 위해 열심인 제게 어머니는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집으로 들어온다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굽히지 않고 휘파람 불기에 열중했습니다. 봄부터 시작한 휘파람 연습이 겨울쯤 되니까 제대로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어요.
겨울 방학을 맞아 긴 긴 겨울밤을 저는 동네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재미로 보내곤 했어요. 학교에서 동화책을 가장 많이 읽는 학생에게 주는 상을 받을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한 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주머니는 무궁무진했거든요. 문제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귀신 이야기나 도깨비 이야기를 해주면 재미있게 듣던 아이들은 밤이 깊어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무섭다며 제 등에 찰싹 달라붙곤 했어요. 그러면 저는 등불을 들고 집이 가장 먼 아이부터 데려다 주기 시작했지요. 제 고향은 마을 가운데에 뒷동산이 있어요. 낮에는 신나는 놀이터인 그 뒷동산은 커다란 봉분이 두 개 있고 비석이니 동자석이니 하는 것이 있어서 아이들이 밤에 제일 무서워하는 곳이지요. 뒷동산 아래에는 공동 화장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도깨비불이 나오는 것을 봤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는 아이들을 뒷동산 너머로 데려다주고 혼자 등불을 들고 뒷동산을 넘어 오며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휘파람을 불었어요. 공동 화장실 곁을 지날 때에는 도깨비가 덜미를 챌 것 같아 무서우면서도 일단 확인해 봐야 안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등불을 비춰 보기도 했지요. 화장실에 도깨비는 없더군요. 가로지른 널빤지를 보고 나서 저는 공동 변소에 도깨비는 없다고 아이들에게 말해 주었어요.
언니는 레코드를 이용해서 경음악이라는 것을 곧잘 들었는데, 저는 언니가 듣는 그 경음악을 휘파람으로 따라 불렀어요. 체리핑크 맘보라는, 뜻도 의미도 모르는 음악이었는데 저는 색소폰의 떨림까지 고스란히 따라 불렀지요. 그때 배운 곡조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어요. 저는 지금도 빨래를 널 때마다 체리핑크 맘보를 휘파람으로 불어요. 마당을 가로지른 빨래줄 위에 빨래를 털어 말리면 왠지 기분이 햇살 아래 펄럭이는 빨래처럼 상쾌해지는 느낌이거든요. 그럴때는 저절로 휘파람이 나와요. 제 휘파람 소리는 담을 넘어 공동마당까지 번져 갑니다. 처음에는 무슨 여자가 휘파람을 부냐고 핀잔하던 마을 사람들도 제가 빨래를 널면 으레 휘파람을 불겠거니 여기게 되었답니다.
피리새는 짝을 찾기 위해 피리를 부는가 봐요. 피리새의 피리 소리는 외로움에 갇힌 영혼이 누군가를 부르는 몸짓이 아닌가 싶어요. 작년에는 홀로 처량하게 들리던 피리 소리가 올 봄에는 주거니 받거니 화음을 맞춥니다. 화답하는 피리 소리는 단음절로 부는 피리 소리보다 아름답습니다. 피리새의 화답을 들으며 저는 문득 피리 소리와 제 휘파람 소리가 어딘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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