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장래 희망이 수의사인 막내는 봄이 되면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노란 병아리를 사들고 옵니다. 그런 병아리는 며칠 살지 못하고 곧 죽게 된다고, 죽으면 속상하지 않느냐고 해도 듣지 않아요. 몇 년 전에는 그렇게 해서 키운 병아리가 죽지 않고 열 마리의 암탉을 거느리는 가장 노릇을 한 적도 있지요. 병아리에게도 정성을 다하니까 정이 들더군요. 그 녀석이 장차 사람들의 먹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어요. 그렇다고 해서 수명이 다 할 때까지 키우다 무덤을 만들어 주고 애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요? 제 손으로 키운 병아리를 음식으로 만들 수는 없어서 친정어머니에게 갖다 주고 얼마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죽어 버리는 병아리를 키우는 것이 곤욕이었지요. 대부분의 병아리는 하루 이틀 지나면 저절로 죽게 됩니다. 이번에 사온 병아리도 눈동자가 맑지 않은 것이 병색이 완연해요. 춥다고 삐약거리는 병아리를 남편이 작은 상자에 넣어두고 그 안에 조그만 알전구를 넣어주었어요. 병아리가 전구에 날개를 깃들이고 제 어미 품인 양 잠을 잡니다. 그 조그만 전구 하나가 병아리에게는 충분한 난방이 되어 주는 셈입니다.
다음날, 죽었겠지 생각하며 뚜껑을 열어 보았는데 살아 있어요. 항생제를 먹였으면 싶더군요. 의약분업으로 인해 마음대로 항생제를 살 수 없게 되었잖아요. 그렇다고 병아리를 들고 가서 처방전을 받아올 수도 없지요. 삶은 계란 노른자를 잘게 부숴 주었지요. 장에 가서 좁쌀도 사다 주었어요. 조그만 그릇에 물을 떠다 줘 봤지요. 병아리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부리로 먹이를 쪼아먹고 고개를 하늘로 쳐들며 물을 마셔요. 그렇게 며칠 지나고 보니 눈동자도 또랑또랑해졌어요. 이제 키도 부쩍 자라나고 날개깃이 나오면서 노랗던 털 색이 하얗게 변했어요. 이 녀석의 말썽도 만만치 않아요. 발가락으로 먹이를 쌀쌀 헤지는가 하면 심심해서 그러는지 입으로 좁쌀을 물어다 물그릇에 그득하게 넣어 놓아요. 좁쌀을 주면, 더 맛있는 계란 노른자 달라고 보채지요. 먹으라고 떠다 준 물로 목욕을 하기도 합니다. 1초에 몇 번씩 좁쌀을 쪼아먹는 것을 보면 본능이 그리 제 삶을 위해 작용하는가 싶습니다. 한낮, 마루에 햇살이 비치는 시간에는 병아리를 상자에서 꺼내 해바라기 하라고 마루에 내어놓습니다. 호기심 많은 병아리는 가끔 주방으로 날아 내리기도 해요.
요즘에는 그 조그만 녀석이 식구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삐삐 하고 부르면 제 나름대로 반가운 소리를 냅니다. 손가락을 넣고 놀아 주다 보이지 않으면 같이 놀아 달라고 삐약삐약거립니다. 부쩍 자란 병아리를 작은 상자에서 큰 상자로 옮겨 놓았어요. 이제 날씨가 따뜻해지면 마당에 내어 놓을 것입니다. 전에 키운 병아리는 제가 마실을 나가면 강아지처럼 종종 걸음으로 따라 다녔지요. 이 병아리도 같이 마실을 돌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왜, 머리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하지 않아요? 제가 키워 보니 병아리는 결코 머리가 나쁘지 않아요. 최소한 저를 사랑하는 사람을 온 몸으로 반길 줄 알고, 커서는 기를 쓰고 낳은 달걀을 사람에게 내어주고 죽어 고기도 제공하잖아요? 저는 병아리를 키우면서, 잘난체하는 우리 인간들이 결코 병아리보다 나은 동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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