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동백하면 흔히 반질반질한 이파리에 붉은 꽃이 피어나는 동백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동백이 아닙니다. 설명하기가 복잡해서 궁리해 낸 것이 유정의 동백이지요. 김유정의 <동백꽃>이라는 소설을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동백과는 무관한 묘사가 나옵니다. 알싸한 향, 노랗고 자잘한 꽃. 김유정이 강원도 사람이니 그곳에는 붉게 피어나는 동백이 없지 않겠는지요. 유정이 본 동백은 노랗고 자잘한 꽃의 향기가 알싸한 꽃입니다. 그런 나무는 산 속 깊은 곳에서만 자라지요. 그러니까 강원도 산골에서 볼 수 있었던 게지요. 그 나무는 생강나무라고도 불립니다. 한방에서도 심장병에 써 왔다고 하니 옛날부터 친숙하게 여겨 온 나무였던가 봅니다.
유정의 동백은, 이른 봄에 산수유 꽃과 비슷한 모양으로 피어나요. 꽃이 가지 끝에서 피지 않고 나뭇가지 중간중간에 매달려 피지요.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나오는데 하트 모양이거나 손가락 같은 잎을 매달게 돼요. 저는 그 나무를 남편에게서 배웠지요. 산골에서 자란 남편은 어릴 때 할머니가 만들어준 동백 잎 부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봄이 되면 깊은 산 속으로 동백 잎을 따러 갑니다. 왜, ‘동백 따러 가세’하는 민요가 있지 않아요? 그 노래에 나오는 동백도 아마 부각의 재료가 되는 동백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제 경험으로 봐서 부각에 필요한 동백 잎을 따는 시기는 4월 초파일 무렵이 제일 적당한 것 같아요. 지역에 따라 기후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그 무렵에 나오는 잎은 너무 연하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아요.
동백 잎을 부각으로 만들자면 손이 많이 갑니다. 찹쌀가루를 풀어 죽을 쑨 다음에 통깨를 넣고 잎사귀에 하나하나 발라줍니다. 앞면이 다 마르면 뒷면을 바르고 채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자꾸 뒤집어 줘야 합니다. 그렇게 품이 많이 드는 부각이지만 해놓고 보면 마음이 뿌듯하지요. 어떤 이는 동백 안주에 먹는 술맛을 못 잊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해요. 저는 동백을 냉동실에 보관하고 일년 중 어느 때나 술안주로 이용합니다.
언젠가 산에서 동백을 따다 손가락 크기 만한 나무를 캐어다 뒤뜰 배나무 밑에 심어 둔 적이 있어요. 동백은 음수라서 큰 나무 그늘에서 잘 자란다는 것이 남편의 지론이었지요. 정말이지 동백은 배나무 그늘에서 잘도 자라더군요. 이제는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담장 밖으로 고개를 비죽이 내밀고 있어요. 노랗고 자잘하게 피어난 꽃을 보면 눈이 가물거려요. 창가로 스며드는 동백 향기를 맡고 있다가 뒤꼍으로 돌아가 꽃에 코를 대 보았어요. 향기가 어찌나 강한지 코가 터질 듯해요. 혹시 씨가 떨어져 바닥에서 싹튼 어린 나무가 있나 살펴보았어요. 어린 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동백의 씨가 맛있어서 새들이 다 쪼아먹었나 싶더군요. 뒤꼍에는 봄마다 무당새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고 하거든요. 저는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어린 나무가 싹트지 못하는 혐의를 무당새에게 두었습니다.
지난 가을 토끼들의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던 뒤꼍에는 토끼 똥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토끼들은 넓은 곳에 살아도 용하게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하는 습성이 있더군요. 동백꽃을 구경하고, 토끼 똥을 먹고 소담스럽게 자란 곰반부리를 토끼에게 주려고 뒤뜰을 나왔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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