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우리는 봄이 되면 더 일찍 찾아온 봄을 맛보기 위해 봄맞이 여행을 합니다. 해남과 강진을 지나 완도로 향했어요. 봄은 완도에 이미 내려와 앉았습니다. 목포 어귀에서는 반만 피었던 개나리가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산에 빨갛게 피어난 진달래도 있고 금세 공중에 흩어질 듯 피어 있는 산벚도 있어요. 장보고 유적이 있는 청해진 근처에는 아름드리 동백이 갯바람에 부대끼며 꽃을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완도 시장 어귀에 있는 높은 언덕 아래로 길다란 개나리 가지가 축 처져 황금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장발 단속에 걸린 70년대 청년의 뒤통수처럼 깡총하던 가로변의 개나리를 보며 아쉬움을 느꼈던 터라 휘늘어진 개나리 줄기가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여객선 터미널 옆에 있는 활어 센터로 갔어요. 그곳에 가면 즉석에서 생선회를 만들어 주는 아주머니들이 있거든요. 누구 엄마 누구 엄마라고 붙여진 조그만 팻말이 정겹습니다. 돔, 광어, 피문어, 낙지, 개불, 소라, 바다장어, 바지락… 많은 바다 생물이 함지박에 담겨 있어요. 제가 모르는 이름의 물고기도 있고요. 호스로 끌어들인 바닷물이 각각의 함지박에서 넘실거리고 있어요. 눈을 감고 소리만 들으면 마치 깊은 산 속 조그만 폭포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광어와 바다장어와 개불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하고 아주머니가 작업하는 광경을 구경했어요. 아주머니가 날렵한 손으로 퍼득거리는 물고기를 금세 음식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마음이 여린 막내는 못볼 것을 보았다며 손으로 눈을 가립니다. 한쪽에선 쌈에 필요한 재료들을 팝니다. 초고추장, 쌈장, 고추냉이, 마늘고추를 2천 원밖에 안 받아요. 생선회와 쌈 재료를 사들고 나왔습니다. 건물 입구에는 해초를 파는 난전이 있어요. 그곳에서 미역과 다시마와 파래를 샀습니다. 완도 바다에서 나오는 해초는 더 맛있어요. 저는 해마다 완도에 와서 일 년 동안 두고 먹을 미역과 다시마를 구입합니다.
생선회를 싸들고 정도리 구계등으로 갔어요. 성수기가 아닌데도 주차비와 입장료를 받더군요. 바닷가 조약돌 밭으로 갔지요.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었어요. 우리는 도시락과 생선회를 자갈밭에 펼쳐놓고 먹었어요. 바다는 진물에서 들물로 변하고 있었는데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듣기 좋았어요. 조금 더 있으면 자갈들이 물에 쓸리는 소리가 따그락 따그락 울릴 것입니다.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 그 소리는 듣지 못할 것 같아요.
먹은 것을 정리하고 자갈밭을 밟고 다녔습니다. 발 밑 깊숙한 곳에서부터 돌들이 부딪혀 울리는 소리가 들려요. 우리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아 자꾸만 자갈을 밟고 다녔습니다. 저는 동글동글한 자갈들을 보면서 억만 년 전부터 바위가 깎여 조약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고 큰딸은 세월의 수효를 자세히 알 수 없으니 그냥 아주아주 많은 시간 동안 돌들이 파도에 씻긴 것이라고 제 말을 정정해 주었습니다. 완도에서 뱃길로 30분이면 노화와 보길도가 있습니다. 언젠가 가 보았던 그 섬들은 생각보다 넓은 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다의 막막함에 갇혀 있을 섬들을 마음으로 헤아려 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해안 도로를 택했어요. 완도는 바다와 산과 땅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입니다. 저는 완도가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어느 곳이나 다 별장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어요. 버려진 땅과 아껴진 땅도 같은 의미일까요? 어쩌면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간직하게 된 것 아닌가 싶더군요. 전 같으면 강진과 영암을 지나 춤추듯 펼쳐진 월출산을 에돌아 갈 텐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 지름길을 택했지요. 집에 있는 동물들에게 늦기 전에 저녁밥을 주어야 하니까요.
금호 방조제를 지나 광주 목포간 도로에 들어섰어요. 차 안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큰딸은 박정현의 노래를 듣겠다고 하고 저는 임방울의 판소리를 듣겠다고 우기지요. 장거리 여행에 나서면 되풀이되는 딸과 저는 작은 다툼이랍니다. 남편이 중재에 나서 박정현과 임방울을 30분씩 듣자고 했어요. 집에 돌아오니 아직 날이 어둡지는 않아요. 남편이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일곱 개의 달걀을 꺼내왔습니다. 오랫동안 차를 타서 그런가, 땅에 내리니 오히려 땅 멀미가 납니다. 하지만 저녁을 지어야지요. 완도에서 사온 피문어로 죽을 쑤었어요. 펄펄 끓는 죽 냄비에서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혼자 사는 뒷집 할머니를 청해 문어 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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