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엄중한 철책을 열면 한강이 보인다

김포 밖에서 훤히 보이는 한강을 정작 김포 사람들은 볼 수 없다니 이런 통탄할 일이 있는가. 드디어 열리게 된 '한강하구'. 철책 안으로 들어가는데 소풍 온 초등학생처럼 마냥 즐겁고 심쿵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어머니 뱃속의 양수에서 사랑의 씨앗이 자라나 열 달이 되면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 유럽 선원들은 물에서 헤엄치지 않았다. 어머니인 바닷물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서이다. 김포는 물의 도시이다. 오곡이 무르익는 너른 김포평야와 함께 한강과 조강, 염하강에서 짠물과 민물이 아웅다웅 사랑싸움하는 연인처럼 밀어내기도 하고 밀쳐지기도 한다. 이제는 금빛수로와 아라뱃길까지 생겨 김포가 온통 물로 감싸였다.

높은 사람은 항상 가운데 앉지 않은가. 고려 때 몽골의 침입으로 천도했던 강화도와 조선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수도인 서울을 좌우로 끼고 있는 신령한 김포반도이다. 농경시대에는 풍요한 생활의 터전이었고 한강의 물길을 따라 온 바닷고기와 민물고기가 그득했고 크고 작은 배를 통해 전국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다. 시대가 바뀌어 살기 좋은 농촌이었던 김포는 산업화 되어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선 도농 복합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많은 외지인이 새로운 낙원 김포를 찾아 둥지를 틀었다.


2015년 12월 말 현재 35만 명의 아담한 도시 김포는 외지인이 다섯 명 중에 네 명꼴이다. 나 역시 몇 년 전 이곳에 살기 위해 왔다. 한강신도시라는 멋진 이름에 잔뜩 기대를 하고 왔으나 김포에는 한강이 없다는 것이다. 뭐라고? 차 타고 지날 때 보면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자알~ 보이더구만. 그런데 밖에서는 분명 보였는데 막상 김포 안에서는 한강을 볼 수 없었다. 정말이냐고?

이곳에 살지 않고 지나쳐 갈 때는 빙 둘러 있는 철책을 무심히 보았다. 그런데 이사 오니 엄중하게 철책이 둘러싸여 있었고 한강을 보지 못하게 총을 어깨에 멘 군인들이 지키는 것이 아닌가. 김포 밖에서 훤히 보이는 한강을 정작 김포 사람들은 볼 수 없다니 이런 통탄할 일이 있는가. 한강신도시 이름이 무색하니 앙꼬 없는 진빵이요,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한 홍길동이 따로 없다. 넓고 쾌적한 아파트의 창문에 온종일 커튼이 쳐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낮이나 밤이나 무더운 여름에도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이 아파트인가? 닭장이지.


60년대부터 철책이 쳐 있다니 이곳 토박이들 오십년 이상 닭장에서 살고 있어도 답답해하지 않으니 정말 인내심 하나로는 기네스북에 오를만하다. 까닭을 알아보니 간첩이 잠수복에 오리발차고 밀물 때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서울까지 밀려온다고 해서 철책도 만들고 군인이 지키게 되었다 한다. 그러면 냉전시대 때에는 그렇다고 치자. 88올림픽 이후 공산권이 붕괴되어 냉전이 종식되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는 곧 통일될 것 같이 방방 뜰 때 왜 김포는 닭장에서 그냥 살았을까. 히로뽕 중독이 아니라 닭장에서 살아보기에 중독되었나?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런 엄청난 문제가 있는지 모르고 한강신도시 이름에 속아 찾아온 나 같은 외지인들은 분노가 적도의 태양처럼 이글거리고, 화산의 마그마처럼 뻥하고 폭발하려고 했다.

시장 어디 있나? 국회의원 어디 있어? 정의감 투철한 이주민이 있다면 주민소환제도 들먹이며 어떻게 하려 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빼고다. 해결능력도 없고 이유도 없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야지 이런 마음을 먹었어도 막상 떠날 수가 없었다. 우선 김포의 공기가 맑아 먼저 살던 곳에서는 해소병처럼 기침도 자주 했지만 여기서는 뚝 끊어졌고 피부가 건조해 등을 자주 긁었는데 이곳에 와서 영감처럼~소리 안 듣는다.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으나 죽을 때는 여기서 죽으리라 마음먹고 알아보니 김포시도 철책제거 노력은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수주한 회사의 소나(수중청음기) 성능이 기준치 미달이라 안보 효과가 없어 소송 중이라는 것이 아닌가.

내 그럴 줄 알았지 알았어. 뭐 한강 안 보면 덧 나냐? 어차피 한강 보러 가려면 한참 걸어가야 하는데. 오십 년 동안 신경 끄고 살았던 토박이처럼 나도 합리화하며 철책에 갇힌 사실을 서서히 잊으려 하는데 김포의 국회의원이 국회 국방위에 ‘한강철책 제거 소위원회’를 만들어 철책을 제거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드디어 2월 25일 초대받아 내가 그토록 간절히 보고자 했던 감바위를 볼 수 있었다,

‘한강하구 철책부분 시험 개방’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철책을 열고 들어가는데 지난 오십 년 동안 이토록 엄중한 철책 안으로 들어가 한강을 본 민간인이 거의 없었다는 것에 어린애처럼 흥분했다. 한강신도시 연합회 간부들과 시청 공무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김경화 사진가, 홍철호 의원과 보좌진들과 함께 담당 장교의 안내를 받으며 철책을 열고 들어가는데 소풍 온 초등학생처럼 마냥 즐겁고 심쿵했다.

한강의 맑은 공기가 산소를 잔뜩 품고 내 폐 안으로 들어와 온 몸으로 운반하자 항상 흐리멍한 눈에 생기가 돌면서 정신이 반짝 났다. 걱정근심 사라지고 억울한 것, 미운 사람 모두 잊어진다. 그 대신 수없이 많은 돛배 사이로 사제지간인 조헌 선생과 토정 이지함 선생이 뗏목을 타고 썰물을 이용해 유유히 한강 하류로 내려가는 환상이 언뜻 보인다. 앞으로 철책이 열리면 이곳에 뗏목 대신 모터보트와 유람선이 뜰 것이겠지만.

안내하는 소령과의 대화를 통해 철책이 제거된 뒤에 이곳에 세워질 공원, 체육시설에 대해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온통 물에 잠기는 서울의 둔치와 달리 바닷물이 이곳까지 밀려와 수평을 이루니 아무리 비가와도 잠기는 일이 없다고 한다. 드디어 김포시민을 위한 판타스틱한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뱀과 고라니도 나온다는데 어디로 숨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왔다가는 험한 놈 만나 보양식이 될지 모르니 어디선가 숨죽이며 우리가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어느새 최종 목적지인 용화사가 보인다. 그곳에 모셔진 미륵불은 모든 이가 평등하게 잘 살고자 하는 민중의 희망을 상징하니 철책 안에 갇힌 김포시민에게 한강을 돌려주는 그런 때가 왔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위로 올라가 잘 포장된 길을 통해 감바위로 되돌아간다.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아직은 한가하다. 양쪽에 늘어선 벚꽃나무는 이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여의도 윤중로 못지않은 명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찾아 주지 않아 잡초만 무성한 생태공원도 복원되어 김포 시민의 휴식처가 될 것이다.

감바위까지 다시 와서 사진 검열을 받은 다음 다시 차로 이동해 일산대교 남단 구간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꽤 넓은 곳이라 활용도가 높은 곳으로 캠핑카 공원, 체육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란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모두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시민의 품안으로 돌아온 한강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한데 용역이 끝나면 계획에 맞춰 공원이나 체육시설로 바뀐다니 그때를 손꼽아 기다려야겠다. 이제 '철책 제거 절대 안 돼' 에서 '조금은 돼'가 되었다. 소송 중인 구간도 어서 해결되었으면 하고 용화사 앞에서 다시 전류리, 조강리를 거쳐 용강리까지 철책선이 순서에 따라 철책이 제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김경화 사진가 ·글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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