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낭송愛 빠지다

낭송은 21세기를 수놓을 새로운 '문학의 꽃'.
그러나 지나치게 감정에 얽매여 영탄조나 변사조로 하는
낭송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시인이 영혼으로 빚어 낸 최상의 언어인 '시'.
그것을 낭송으로 대중과 공유한다는 것은
시인의 삶을 노래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포의 시골 소녀, 시를 만나다
 좋아하는 시집을 품고 다니던 나의 여중고시절, 책꽂이에는 몇몇 인기 시인의 시집이 꽂혀있고 나는 그렇게 시집을 읽고 외우며 수줍게 사춘기를 보냈다.
 기자가 되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신문방송학과를 고민했지만 부끄럽게도 고득점을 요하는 학과다보니 내 성적이 여의치 않았다. 성적에 맞춰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를 선택했다. 실기시험 면접관은 방송계의 깐깐한(?) 원로이신 임학송 교수님과 연극계의 쟁쟁한 원로이신 오사량 교수님 등이셨다. 연기나 노래 등으로 다양한 개인기를 앞세워 실기에 임한 수험생들이 주를 이뤘다. 시골에서 성장한 내가 그런 개인기로 시험을 볼만큼의 특기가 있었을까. 내겐 시낭송을 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찌 보면 시시하게 느껴졌을 법도 한 시낭송. 하지만 나름 문학소녀였던 나는 김남조 시인의 <가난한 이름에게>를 읊었고, 신기하게도 합격이었다.  시낭송으로 대학입시에 합격한 최초의 케이스가 아니었을까?

시, 책 밖으로 외출하다
 대학시절에도 전공서적과 함께 시집은 언제나 내손에 들려 있곤 했다. 그 시절의 시는 그렇게 텍스트로 우리에게 존재했다. 그러나 21세기는 인터넷의 대중화로 인해 글은 더 이상 책 속에만 갇혀있지 않는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었다. 컴퓨터만 켜면 소리 혹은 영상으로 편집된 글을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또한 전국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시낭송대회나 각종 문학 행사를 통하여 많은 글이 낭송 또는 낭독이 되고 있다.
 낭송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크게 소리를 내어 글을 읽거나 욈’을 뜻하는 명사이다. 즉, 낭송이란 문학 작품들을 소리내어 읽거나 외우는 것을 말한다. 문서로 한정된 글을 소리로 전달함으로서 듣고, 보고, 말하는 세 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진 문학의 새로운 장르인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는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낭송은 더욱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각종 문화행사에서도 낭송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낭송 발표회나 낭송 녹음 파일을 통해 문자와 음성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좀 더 명확하게 할 수도 있다. 예컨대 낭송문학은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다수의 사람들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글이 활자로 나오기 이전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문학(口傳文學)이었다. 문서가 없던 시대의 글들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기억되고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에 그 때가 낭송의 시초이며 엄밀하게 말하면 낭송이 가장 오래 된 문학의 장르가 아닐까. 바야흐로 낭송은 21세기를 수놓을 새로운 ‘문학의 꽃’ 인 것이다.

낭송은 어떻게 할까
 낭송은 온라인, 즉 녹음 낭송과 오프라인으로 일컬어지는 무대 낭송으로 나뉠 수 있다. 낭송을 하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유형의 낭송 방법이 각기 다름을 알아야 한다. 작곡가가 노랫말에 곡을 붙이듯이 주어진 시를 어떻게 낭송하느냐에 따라 글의 느낌은 달라질 수 있다. 때문에 낭송을 하기 전에 언제나 시를 충분히 숙독해야 한다. 낭송의 여러 가지 방법과 기교는 그 다음 일이다.
 나는 딱 한번 낭송대회에 참가해 본 적이 있다. 물론 운이 좋아 단번에 수상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낭송? 아직 갈 길이 멀다. 대회의 참가자들이(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감정에 얽매여 영탄조나 변사조의 낭송을 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시가 거의 비슷한 느낌으로 읽혀지고 들려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시인이 영혼으로 빚어 낸 최상의 언어인 ‘시’. ‘시’는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서 시인의 삶의 굴곡과 경험이 자기 성찰을 통하여 ‘시’로 태어난다. 그것을 낭송으로 대중과 공유한다는 것은 시인의 삶을 노래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연 그 시를 쓴 시인이 그러한 낭송을 직접 들었다면 진심으로 감사했을까?
답은 독자의 몫이다.

욕설과 상소리에 시는 좋은 처방전
 요즘 우리 일상의 언어는 어떠한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다. 예전에 공중파 방송의 특집방송에서 초등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욕설을 한다'는 학생이 97%로 나타났다. 특히 '뜻도 모르고 욕설을 한다'는 응답은 72.2%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조사에서는 학생들이 평균 75초에 한 번씩 욕설을 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들에게 이미 욕설은 모든 대화의 접두사, 접속사, 접미사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대중매체나 인터넷 등의 사이버공간과 통제 없는 또래 집단 등이 청소년의 언어문화를 지배하게 된 이유다.
 논어에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제대로 말할 채비를 갖추지 못한다’는 대목이 있다. 시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말을 안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막말과 욕설이 판치는 세상에서 좋은 시 읽기는 세련된 언어 구사와 인품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낭송아 놀자
 낭송을 배웠다고 해서 먹고 사는 데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재테크처럼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돈이 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낭송을 배워가면서 자신을 위해 무언가에 빠져있다는 충만감과 자아실현을 통한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릴 적 학예회에 서 본 이후 성인이 되어서는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한 자신의 재능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기분, 그 당당함을 자신에게 선사한다면 바로 그것이 행복 아닐까. 낭송을 자아실현을 위한 놀이로 즐기자.
 해서 나는 MC가 본업이지만, 전문시낭송가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사는 땅 김포에 시낭송을 보급하기 위해 2013년부터 김포시민회관 2층 (사)김포예총에서 김포시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무료 시낭송 아카데미를 열어 강의를 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해가 거듭될수록 발음이 정확해지고 당당해지는 모습을 보며 시낭송 아카데미를 시작한 것에 나는 만족한다.
 참고로, 시낭송 아카데미 교실은 2016년 3월에 개강하며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김포 시민회관 2층 (사)김포예총에서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이재영 (사)김포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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