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하다’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생김새가 탐스럽다’와 ‘음식이 풍족하여 먹음직하다’가 그것이다. 맞춰 입은 듯 꼭 어울리는 ‘소담’이라는 아호를 지닌 임송자 시인. 작은 채송화의 꽃그늘도 큰 시어로 담아내는 그녀의 둥근 시들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차려내는 임 시인의 소담한 밥상 이야기가 듣고 싶어 샘재 언덕위에 있는 ‘소담쌈밥’을 찾았다.
따갑게 퍼붓는 8월의 여우비가 옛날 양철지붕 위를 내달리 듯 차 지붕을 내 달리고, 주황의 능소화가 버선발로 반겨 맞는 ‘소담쌈밥’ 집. 임송자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게 모든 것이 詩답다.
 
흰 구름을 동경하던 소녀, 박범신을 만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제가 다니던 내포초등학교로 젊은 남자선생님이 부임해 오셨어요. 그 때 마침 저희 반 담임선생님이 건강이 좋지 않아 좀 쉬게 되어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셨죠. 그 분이 바로 박범신 선생님이었는데, 첫 수업시간에 무작정 ‘동시’를 지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 날 임 시인이 써낸 동시의 제목은  '흰구름'이었다고 했다.
“제 고향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동네라 하늘은 꼭 연못처럼 생겨 있었고, 거기에는 흰 구름이 놀고 있었죠. 전 연못을 벗어날 수 있는 흰 구름이 부러웠어요. 언젠가는 저 구름처럼 고향을 벗어나고 싶다고 시를 적었죠. 그런데 제 시를 읽은 선생님이 ‘내일부터 도시락을 싸와라’ 하셨어요.” 
소설가 박범신 선생은 시심으로 가득 찬 어린 임 시인의 시인으로서의 기질을 한 눈에 알아보았던 듯 했다.

다독과 다작과 다상이 시 쓰는 최고의 비법  
“학교 뒤에 작은 잉어연못이 있었는데, 그 곳에 작은 의자 하나를 놓아두고 매일 30여권의 동화책을 읽었어요. 그 때 읽은 동화들이 지금도 생각나고, 다시 생각해봐도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몰라요.”
임송자 시인이 시인을 꿈꾼 것도 그 즈음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 무주군백일장대회에 나가서 장원을 했는데, 부상으로 24색 왕자크레파스를 탔어요. 그 후로 신사임당 백일장 등 여러 대회에 나가서 장원도 여러 번 하고, 상도 많이 탔죠. 무엇보다도 많이 읽고 많이 써 본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임 시인은 지금도 가끔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나갈 때면 꼭 들려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시에 정도는 없어요. 시를 비롯한 모든 문학은 다독과 다작, 다상이 최고죠. 전 아이들에게 '만약 너희들이 나무에 대한 시를 쓰고 싶다면 마음속에 천번 이상 나무를 심어보라'고 얘기해 줍니다."
학교를 오가던 십리길, 자연에서 배운 시심
“제 고향은 육지였지만 금강이 휘돌아 흘러가고 있어 마치 섬 같았어요. 그 섬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상급학교로의 진학이었죠. 다행히 저는 공부도 곧잘 하고, 글재주도 있어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는데, 내가 살던 동네에는 또래 여자아이가 없었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교를 오가는 십리 길에 있던 모든 자연들이 제 벗이었고, 저를 오늘의 시인으로 만들어줬죠.”
임 시인은 요즘도 앞마당에 핀 채송화 한 송이에게도 인사를 건네는 버릇이 있다고 말한다.
“어느 날 모담산을 내려오는데 비어있는 한옥마을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봤어요. 그날따라 그 꽃들의 풍경이 얼마나 슬퍼 보이던지 제가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임 시인은 2012년 ‘풍경을 위로하다’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책 이름과 같은 ‘풍경을 위로하다’라는 시에서 임 시인은 그날의 슬퍼보였던 꽃그늘을 이렇게 위로하고 있었다. ‘서러워마라. 세상천지 꽃그늘만큼 환한 그늘이 어디 또 있겠느냐.’ 임 시인의 많은 시들이 둥글고 따뜻한 이유를 알 듯 했다.

‘소담’한 밥상에 담긴 임 시인의 마음
‘소담쌈밥’의 밥상은 말 그대로 ‘소담’하다. 자작한 우렁쌈장과 장떡, 말리거나 제철에 거둔 각종 나물들, 직접 담은 김치와 깔끔한 된장찌개, 푸짐한 쌈야채. 임 시인이 만들어 내는 건강한 밥상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져 있을까.
“지금도 고향에서는 여든이 넘은 노모가 저를 위해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래서 기름 한 방울까지도 믿을 수 있는 것만 씁니다. 제가 말릴 수 있는 것은 직접 말리고, 그렇지 못한 것은 눈으로 직접 확인해서 믿을 수 있는 것만 구입해 와요.”
밥은 생명이라고 생각해 음식을 놓고는 셈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임송자 시인은 밥을 짓는 철학마저도 소담하고 따뜻했다.
“제 마음을 알아주는 주변의 많은 분들이 좋은 먹거리를 보내주고 계세요. 어머니를 포함한 그 분들의 마음이 저희 밥상에 담깁니다. 누구나 흔히 하는 말이지만 ‘내 가족이 먹을 밥’을 합니다. 詩나 밥이나 모두 ‘짓는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시를 짓는 마음으로 밥을 짓습니다.”

하늘연못에 의자 놓아두고 시를 쓰고 싶다 
임송자 시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조용한 산 속 같은 데서 살고 싶어요. 더불어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시를 쓰면서 살면 좋겠다는 거죠. 살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을 때마다 시가 삶을 버티는 힘이 돼 주었기 때문에 시를 쓰면서 사는 일이 행복해요.”
지난 날, 작은 하늘연못이 답답해 넓은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흰 구름을 동경했던 임 시인이 이제는 산 속에서 작은 하늘을 만들고 그곳에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연못을 떠났던 흰 구름이 회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어느 힘든 날, 축 처진 어깨로 찾아들면 슬쩍 따뜻한 장떡 한 장 붙여 내줄 것 같은 임송자 시인의 따뜻한 눈이 능소화를 닮았다. 그녀의 시가 넉넉한 엄마의 품을 닮았다.                                                          
윤옥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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