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잘 살기.제대로 살기.더불어 살기"

대로변에 큰 간판이 걸린 번듯한 사무실도 아니고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김포아트홀 뒤 2층에 있는 사무실 하나가 있다. 하지만 그 사무실이 결코 작지 않은 이유는 그곳에 '디자인 나무'라는 김포 출판·인쇄업계의 큰 나무가 서 있기 때문이다. 김포에서 만들어지는 내로라하는 대부분의 인쇄, 출판물은 모두 '디자인 나무'의 손을 거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디자인 나무' 심재식 대표를 만났다. 그는 사업가이면서 '녹색김포실천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의 경영 노하우와 사회운동에 나선 이유를 듣고 싶어 커피 데이트를 청했다. 

손해 보는 영업전략, 책임지는 리더
“딱히 정해놓은 영업전략은 없습니다. 그냥 좀 손해 보는 듯 살다보니 결국 손해는 안보더라구요.”
심 대표가 들려주는 '손해 보는' 방법(?) 몇 가지는 이랬다.
"사업을 하다보면 돈이 사람을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역시 어려워 본 적이 있는 터라 사정이 어려워 대금을 못주는 분이 있으면 일단 기다려줍니다. 또한 인쇄나 출판물들은 간혹 인쇄 결과가 잘못되는 경우도 있죠. 오더를 주는 쪽에서 잘못된 내용을 주었을 수도 있고, 저희 쪽에서 실수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런 경우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밤을 새워 다시 인쇄를 해 주기도 하고, 추가제작을 해 주기도 합니다. 누구의 잘잘못인가를 따지기 전에 일단 일의 진행을 돕고 나서 뒷일을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건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것이 대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에게도 고객에게도 책임지는 리더가 있어야 믿고 일 할 수 있으니까요." 

자녀에게 잘 사는 모습 보이고 싶은 아버지
"제 꿈은 역사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청주사대에 입학 할 때만 해도 그렇게 될 줄 알았죠. 그런데 입학하고 두 달 남짓 되던 5월에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습니다."
그 일로 심 대표는 민주화에 눈 뜨기도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했다.  
"제가 수감되어 있을 때 아버지가 면회를 오셨습니다. 당연히 혼낼 줄 알았던 아버지가 한 마디 툭 던지고 가시더군요. '니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잘못을 빌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빌 필요 없다'. 그동안 제게 아버지는 그냥 술을 좋아하는 무뚝뚝한 분이셨는데, 그날 아버지의 믿음과 자상함, 듬직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제 아이들을 생각하며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살아야 아이들도 그 모습을 보고 따라올 테니까요."

궁해서 시작한 일, 되갚기 위한 노력
"김포에서 처음 갖게 된 직업이 신문사 기자였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여러 가지 보람도 있지만 힘든 직업이기도 하더라구요. 마감에 밀려 회사에서 쪽잠 자는 일은 허다했고, 급할 때는 직접 편집을 해야 하기도 했죠.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아내의 결혼조건은 제가 기자를 그만두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좋은 가정, 좋은 아버지에 대한 꿈이 있던 심 대표는 그 후로 직업을 바꿔 북한상품 전문취급점을 하기도 했다. 까르프에 입점에 하루 수백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아주 잘 운영되던 점포가 무리한 확장과 북한과의 관계, 계절적 요인에 의해 물건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몇 년 뒤 큰 손해를 보고 결국 손을 뗐다.
"사업 실패 이후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기자시절 알고 지냈던 분이 제게 출판 일을 맡겨 주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사업자등록도 안 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가장이 되어 계속 놀고 지낼 수는 없어 출판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기자시절 어깨 넘어 배운 CAD와 메킨토시 기술이 그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 후로 저는 여러 지역민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무실도 없던 제게 흔쾌히 자기 사무실을 내주던 분도 있었죠. 그 분들의 도움이 있어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가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고 녹색김포 대표 등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어쩌면 그가 어려울 때 손 내밀어 준 지역 사람들 때문인 듯 했다. 그러나 오늘의 '디자인 나무'가 있기까지 심 대표가 기울인 노력 또한 만만치 않았을 터. 그는 직접 실무를 배워 디자인의 고급화, 종이 질 상향 등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던졌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하는 작은 것들
"술만 마시면 자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는 사람인데 어느 날 제게 신학을 배우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큰 힘은 아니지만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 조금씩 학비를 보탰습니다. 그는 지금 술도 끊고 열심히 신앙생황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나 조금씩이라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면 사람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 대표가 오지랖 넓게 사람들을 돕는 이유다. 그는 아이들 이름으로 심장병어린이재단에 기부금을 보내는 일을 시작으로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곳에는 주저 없이 단돈 만 원씩이라도 기부금을 보내고 있었다.
"제가 아버지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바뀌면 가족이 행복해 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 분들에게 아버지학교를 소개시키고 있습니다."
심 대표는 더불어 살기 위한 노력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아버지학교 입학을 권한다. 그리고 그의 권유로 아버지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에게 입학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저보고 정치하려고 그러냐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정치는 제게 맞는 옷이 아닙니다. 사람은 제 각기 자기에게 맞는 옷이 있고, 전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이 제일 편하고 행복합니다."
매출 1%의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는 심 대표의 꿈은 단순(?)했다.
잘 살기, 제대로 살기, 더불어 살기.                

윤옥여 기자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