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득 소방관

불안장애, 수면부족 있지만 사명감 커
미리 외양간 고쳐 소 잃지 않았으면…

살면서 112 범죄신고 전화를 해야 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다 할 수 없지만, 아프다거나 하는 이유로 119로 전화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슈퍼맨처럼 지구를 지켜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가장 먼저 달려와 줄 것 같은 믿음이 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119 구급대원을 포함한 소방대원들 아닐까. 소방관들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일 하고 있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양촌소방서에 근무하는 정해득 소방관을 만나보았다. 

- 소방관들, 불 끄는 일 외에 어떤 일들을 하나.
“소방관은 모두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화재를 예방하거나 진압하고 위급한 상황에서의 구조활동 등을 한다. 하지만 점차 현대인들의 삶이 복잡해짐에 따라 그 활동영역도 많이 확대되어 문잠김, 승강기 사고, 동물구조, 벌집제거 등 생활 속 다양한 안전사고에 출동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소방교육, 소방체험장, 구급체험실 운영, 특정소방대상물 조사, 소방훈련, 홍보 등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 기억에 남는 출동 에피소드 하나 들려 달라.
“10년전 부천소방서에서 구급대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구급출동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20대 여자가 남동생에게 맞아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과호흡 상태라는 것은 교육을 받아서 알았는데, 처음 접하는 광경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응급처치가 생각이 안 나더라. 일단 산소마스크로 산소를 공급하며 병원에 도착했는데 의사가 ‘과호흡 환자에게 산소 투여는 위험하다’고 일러주었다. 과호흡일 때는 비닐봉지 같은 것을 입에 대주어 자기가 호흡한 것을 다시 들여 마시게 해야 하는데 제대로 응급처치를 못한 거였다. 자책하고 있는데 보호자가 사무실로 찾아와 딸 목숨을 살려주어 고맙다며 인사하더라. 속으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 여러 응급상황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상황을 대비한 소방관들의 훈련은?
“소방관이 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는다. 소방관들은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면 새로운 교육을 받는다. 기본 교육 이외에도 소방행정실무나 응급구조사 교육 등 대응구조 관련 교육, 소방안전교육사 등 예방홍보 관련 교육 등도 받고, 그 밖에도 화재진압 교육, 인명구조 방법, 로프매듭법, 암벽등반 교육 등 실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전문적 교육훈련도 수시로 받는다.


- 메르스로 전국이 혼란스러웠다. 119구급대원이나 소방관들의 피로도가 상당했을 듯한데.
“메르스 전담구급대원은 보호복 착용은 물론 차량내부에도 보호막을 설치한 후 메르스 의심환자와 접촉환자를 이송했다. 보호복을 착용하면 땀이 배출되지 않아 마치 한증막에 온 듯한 느낌이다. 그 상태로 오래 있다보면 땀이 보호복 한 곳에 고이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한 체력소모나 피로누적 뿐 아니라 우리도 인간인지라 출동 후 소독을 완료했어도 혹시나 메르스에 감염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도 컸다. 그래도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그것이 사명감이다. 이제 진정국면으로 들어선 것 같아 다행이다.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소방관들이 겪는 애로사항이 여럿 있을 듯 하다.
“소방관들이 겪는 애로사항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방화복 같은 장비의 부족이다. 방화복은 모든 대원들에게 동일하게 지급되는데, 화재를 진압하는 대원들은 방화복이 빨리 낡아지기 때문에 가끔 방화복이 부족한 경우가 생긴다. 또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애로사항인데, 소방관은 화재, 사망사고 등 어두운 면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소방관들이 있다. 며칠씩 밥을 잘 못 먹을 때도 있고, 잠을 못 이루거나 불안장애 같은 것들을 겪는다.


- 그럴 때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지
“애로사항을 말한다고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화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동료들이나 가족, 친구들의 이해와 격려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스트레스가 심한 대원들은 전문가를 찾는 경우도 있다.”


- 출동을 나가지 않는 대기시간에는 어떻게 보내나.
“소방공무원이 출동을 안 할 때 노는 줄 아는 분들이 많더라. 하지만 안에서도 하는 일이 많다. 화재대응을 위한 각종 훈련이 있고, 장비의 노후 등 이상 상태 파악, 각종 회의, 소방 활동 자료조사 등 일이 많은 편이다. 그래도 남는 시간에는 보통 족구를 하는데, 소방관들은 족구를 통해 동료들 간의 우애와 체력을 단련한다. 화재진압 등의 활동은 체력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들끼리 경기를 해 보면 소방관이 족구를 제일 잘한다.”


- 소방관으로서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대한민국은 아직 안전에 대해서는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멀다. 항상 경제가 우선이고 안전은 후순위이다. 정부 조직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안전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안전에 대한 조직은 항상 후 순위로 밀리고 안전 관련 공무원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진급에 뒤처지거나 한직으로 여긴다.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는 있지만 일을 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안전관련 예산역시 ‘예방’에 대한 예산보다 '복구'에 대한 예산이 더 많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미리 외양간을 고쳐 소를 잃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윤옥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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