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이연우 씨가 사는 법

힘든 날들은 끝! 희망을 본다

이른 여름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초, 이연우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편안한 복장이었지만 25살의 나이답게 환하게 빛나고 있는 예쁜 연우 씨를 보며 혹여 대화에 어려움은 없을까 걱정했던 마음은 사라졌다. 남들보다 조금은 더 쓴 커피 같은 인생을 살아왔을 청각장애인 아가씨가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어 커피를 시켰다.

할아버지가 먼저 알아챈 연우 씨의 장애
“돌이 지나도록 너무 얌전한 아이였대요. 누가 큰 소리를 내도 놀라는 일이 없고, 옆에서 큰 물건이 떨어져도 놀라지 않았대요. 이상하게 생각하신 할아버지가 검사를 한번 받아보라고 하셨나봐요. 검사를 받고 나서야 제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아셨다고 해요”
연우 씨와의 대화는 한눈을 팔수가 없다. 보통의 대화법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거나 소리를 듣는 대화법이라면 연우 씨와의 대화법은 서로의 입을 바라보며 천천히 나누는 대화법이었다. 
“유치원 때까지는 애화학교라는 청각장애인 특수학교를 다녔어요. 그곳에서 폐활량을 올릴 수 있는 풍선불기나 색종이불기 같은 것들을 배웠죠. 수화도 배우고요. 하지만 초등학교부터는 일반학교를 다녔어요.”
왜 연우 씨는 일반학교를 다녔을까.
“애화학교에서는 농아들을 위한 기본적인 기능들이나 생활에 필요한 기초학습을 가르치죠. 반드시 배워야 하는 필요한 교육이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교육을 배우고 싶었어요.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배우는 보통의 교육을 배우고 싶었던 거죠.

평범하고 싶었지만 '다름'을 느꼈던 시절
“중학교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이 자기가 시킨 일을 하지 않았다고 혼을 낸 적이 있어요. 전 선생님께서 칠판에 무언가를 적으면서 한 말은 들을 수가 없죠. 입술을 읽을 수가 없으니까요. 학기가 시작되면 엄마는 학교를 찾아와 담임선생님께 제 상태에 대해 설명했어요. 초등학교 때 까지는 한 분이 가르치셨기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중학교에 올라오니 과목마다 가르치는 분이 달라 어떤 분은 제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죠. 그때는 저도 사춘기라 너무 억울하고 화가 많이 났어요”
연우 씨는 중학교 때 1년간 다시 농아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농아학교는 다니기는 쉽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비록 친구도 별로 없고, 공부도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저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죠. 그래서 다시 일반학교로 돌아왔어요.”
한 때, 낳아준 엄마를 원망해 본 적도 있다는 그녀의 말이 십분 이해가는 대목이었다. 평범하지 않기에 평범하다는 것의 소중함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다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했다.

대학을 다니며 드디어 가질 수 있었던 꿈
“저는 대학도 일반대학을 다니고 싶었어요. 처음 엄마가 나사렛대학교에 가기를 권했을 때는 가기 싫었죠. 너무 멀기도 하고, 마치 농아학교에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나사렛대학교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여러 가지 장비들과 수업내용을 수화로 설명해 주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저는 그곳에서 캐릭터디자인학과를 전공했는데 대학을 다니면서 비로소 제대로 공부란 것을 하게 되었고 꿈도 생겼어요.”
이연우 씨는 올해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텔레비전을 보면 가요프로 무대에 가수 뒤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영상들이 있죠. 그걸 모션 그래픽이라고 하는데 전 그게 참 매력적이에요. 제가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노래에 맞춰 영상을 만들거나 하는 부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인테리어 디자인)과 하고 싶은 일(모션그래픽디자인) 중 어느 것 하나도 놓치기 싫어서 두 가지 분야를 다 공부하고 있어요. 더디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어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것은 행운
어쩜 그렇게 밝을 수 있을까. 인터뷰를 하는 내내 연우 씨는 웃고 있었다. 마치 지난 25년간 어느 하나 다르다는 것으로 인해 속상해 보지 않은 듯 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느꼈어요. 초·중·고에서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하라는 것을 해야 하죠. 하지만 대학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 많아요.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경험해 봤지만, 결국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많더라구요. 그 중에 하나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예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실패를 거듭한 만큼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요?”
취업장벽 앞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뚫을 때까지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는 이연우 씨는 이번에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는 '국민행복IT경진대회' 경기도 예선에서 청각장애인부분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국민행복IT경진대회' 에서 금상 수상한 이연우 씨.

고생한 엄마, 호강시켜드리고 싶어
“저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아도 편안한 저만의 보금자리를 갖고 있으면 더 좋겠네요. 의뢰받은 작업은 메일로 보내고, 저는 엄마를 위해 고급 호텔에 저녁을 예약해요. 저 때문에 고생한 엄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은 것이 제 꿈이예요”
10년 후의 연우 씨는 어떤 모습일까 물어보았다.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봄 햇살 같은 한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꿈을 위해 각종 컴퓨터 관련 자격증과 디자인 관련 자격증도 준비하고 있다는 연우 씨는 무엇 하나 다를 바 없는 또래의 고민과 꿈을 가진 젊은이였다.
“얼마 전에 의사소통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일을 하면서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인간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결국 그 어떤 일도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 다 함께 공유하고 일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녀는 청각장애라는 장애가 있음에도 끊임없이 우리와 함께 걸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윤옥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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