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시 통진읍 마송주공아파트 전경. 이곳에 사할린에서 영주귀국한 동포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일본 "영주귀국 사업 올해로 마무리짓겠다"
한인단체 "자손도 귀국시켜 생이별 막아야"
정왕룡 의원 "고려인주민지원 조례안" 발의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노역 등 징용으로 사할린에 갔다가 귀국하지 못한 한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해 사는 영주귀국 사업이 올해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대한적십자사 특수복지사업소 관계자는 13일 "올해 190명(2세 포함)의 영주귀국 예산을 확보했으나 실제 신청 인원은 97명(1세 59명, 2세 38명)에 불과하다"며 "계획 인원보다 신청자가 현저히 모자라 이달 말 영주귀국 지속 여부를 놓고 일본 정부와 벌일 협상에서도 추가 예산을 얻어내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업은 지난 1989년 7월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에 따라 시작됐다. 일시 모국 방문과 영주귀국자들의 고향 방문(역방문) 등을 포함해 양국 적십자사가 실무를 맡아 '영주귀국 사업'이라는 틀 속에서 진행해왔다.

영주귀국 신청 대상은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할린에서 출생했거나 거주한 한인,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와 장애 자녀에 한한다. 지난해 103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4천293명의 한인이 고국에 돌아와 정착했다.

이 가운데 세상을 떠나거나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간 이들을 제외한 3천여 명이 현재 안산·인천·파주·김포·천안·원주 등지에 정착해 살고 있다.

영주귀국자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특례수급자로 지정돼 특별생계비, 기초노령연금, 의료 급여 등을 지급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3∼2015년 조사를 토대로 영주귀국 희망자 238명 가운데 지난해까지 영주귀국 후 남은 인원 1세 126명을 올해 영주귀국시키고 사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의 이 같은 입장에 사할린 한인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7일 사할린주한인문화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제12차 사할린 한인단체 대표자회의에서 한인단체 대표자들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은 ▲'사할린 한인 지원 한·일 적십자사 공동 사업체'에 사할린 한인단체 대표들의 참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자손도 희망자에 한해 영주귀국 허용 ▲영주귀국이 마무리되더라도 사할린 잔류 1세들에게 월 300달러의 생계 지원금 지급 ▲부모 사망자 모국 방문 추진 ▲징용당한 사할린 한인들의 미지급 임금, 우편예금을 현재의 화폐 가치로 환산해 특별기금 조성 ▲1세 영주귀국 및 일시 모국 방문 시 동반자 동행 추진 ▲1세 모국 방문 시 관광 대신 건강검진 추진 등을 담고 있다.

단체 대표들은 이 결의문 내용을 조속히 이행하도록 러시아와 일본 정부에 적극 호소하기로 했다.

한편 김포에는 통진 마송에 123명, 구래동 솔터마을에 132명이 영주귀국해 살고 있다. 김포에 정착한 사할린 영주귀국 한인들의 자립과 처우개선에 힘써온 정왕룡 의원은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사업은 일본의 피해보상 차원이 아니고 일본 적십자사의 지원형식을 띤 사업이어서 아쉬운 점이 많다"며 "정부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사할린 한인들에게 지원을 하고 추후 일본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정왕룡 의원은 김포시에 거주하는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자를 포함 고려인들의 정착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난 12일 김포시의회에 '김포시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 이 발의안은 오는 19일 김포시의회 임시회에서 심의될 예정이다.

사할린 거주 한인 동포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 강제징용에 의해 거주하기 시작했다. 일제 말기 이 지역에 강제징용된 한인은 무려 15만명 정도에 이르렀는데 제2차세계대전 종전 당시 약 4만3천000명의 한인이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시 상황에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한국인들을 가라후토로 강제 징용하여 이들을 탄광·군수공장 등에서 혹사시켰다.

일제는 1937년 만주전쟁에서 군수산업 부문의 노동력이 부족하자 1939년부터 모집의 형태로, 1942년부터는 관 알선 방식으로, 1944년부터는 강제징용의 형태로 조선인들을 끌고 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나면서 가라후토는 소련에 반환되었다. 이에 따라 가라후토의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송환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을 방치했다. 광복 이후의 혼란으로 대한민국은 이들을 송환할 여력이 없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냉전으로 대한민국과 소련이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사할린의 한인들은 대한민국과 소련, 일본 세 나라의 무관심 속에서 무국적자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일부는 소련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으나, 대한민국으로 귀환을 바라던 1세대들은 계속 무국적자로 남아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1988년 이후 대한민국과 소련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이들의 고향 방문이 추진되어 일부가 대한민국을 찾기도 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대한민국에 정착을 희망하여 사할린 교포 정착촌이 조성되었다.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사업

1987년 일본 정부가 사할린 한인에 대해 227만엔의 예산을  최초 책정한 것이 시작이다.

이듬해 1988년 사할린 한인들의 모국 방문사업이 시작돼 1989년 사할린 한인 450명이 한국을 방문했고, 일가족 9명이 처음으로 영주귀국을 하게 됐다.

1994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사할린한인에 대한 지원을 논의한 결과 사할린한인 1세 대상의 '영주귀국시범사업'으로 '500세대 사할린한인 전용 아파트'  및 '100명 수용 요양원'건립 추진을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건립부지를 제공하고 일본 정부는 건설경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영주귀국을 할 수 있는 사할린 한인에 대해 한·일 양쪽 정부는 사할린한인 1세를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로서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에 이주하여 계속 거주중인 자'로 정의했다. 또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사할린 한인의 지원을 위해 일본 정부는 귀국비용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2011년 3월 현재, 사할린에는 약 3만여 명의 한국계 동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중에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인 한인 1세는 약 1,5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1년 3월 현재까지 영주귀국 시범사업·확대사업 등으로 3,906명이 한국으로 영주귀국했다.

사할린 영구귀국 한인에 대한 지원

1996년 12월 4일 '국무총리 주재 재외동포정책위원회' 회의에서 사할린에 거주하다가 모국으로 영주귀국한 동포들에게 지원되는 모든 비용을 국고에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원대상은 영주귀국 사할린 한인 1세 및 1세의 배우자와 장애인 자녀이다.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 1세가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 입국하게 되고 정부는 이들 영주귀국 한인들에게 정착을 위한 지원을 하게 된다.

외교부(대한적십자사)가 사할린 거주 한인 중 대상자선정 → 국토교통부(한국토지주택공사) 거주지 마련 → 거주지별 대상자명단 해당 시군구청에 송부 → 입국 → 정착 → 수급자신청 → 수급자조사 및 책정 → 급여지급(생계·주거비, 특별생계비 등) → 항공료 및 집기비품비 지급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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