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못잡으면 내일 잡으면 되고 물고기가 어디 가나





물고기 잡는 명당 따로 있나...내 그물에 안걸리면 다음 그물에 걸리겠지
같은 어민끼리 먹고 살아야지...직판장 안에서 호객행위 안 하는 건 불문율

태백산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도도히 흐르는 한강. 장장 494km를 숨가쁘게 달려오던 한강이 김포평야를 지나 바다로 들어가기 전 우뚝 솟은 봉성산에 막힌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 산을 에돌아 살짝 북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던 강물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듯 잔잔한 물결로 생을 마감한다. 바다와 강물이 만나 하나가 되는 이곳. 이곳이 전류리다.

전류리의 새벽은 활기차다. 아직 동도 트기 전 희뿌연 안개만 가득 찬 전류리 포구에 철조망 사이로 난 통문이 열리면 저마다 어깨까지 오는 장화를 신은 어부들이 담배를 물고 통문을 지나쳐 자신들의 배로 간다. 어부들 사이로 성춘호 서승석 선장도 발을 재게 놀리며 배에 올라탄다.

전류리의 아침을 깨우는 첫 소리는 굴삭기의 우렁찬 엔진 소리. 간밤에 뭍으로 올려놓은 배들을 강물에 띄우기 위해 굴삭기가 동원된 것이다. 강물에 띄운 배에 올라탄 어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전류리 어촌계에 소속된 배는 모두 40여척. 1톤 남짓한 작은 배이지만 배 위에는 그물이 세 틀씩 갖춰져 있는 제법 튼실한 배다. 출항 준비에 바쁜 서 선장을 붙잡고 말을 건넸다.

야행성인 숭어 잡으려 동 트기 전 출항

-어디까지 나가나
“여기서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강 한가운데로 군사분계선이 지나가 거기까지는 갈 수 없어요. 강물 가운데는 북쪽 일산과 고양 어촌계와의 경계선이라 경계선까지 나갑니다.”
-고기는 어떻게 잡나? 어제 그물을 펼쳐 놓았나? 아니면 지금부터 그물을 내리나?
“어제 놓은 그물이 아니고 여기서는 아침에 나가 그물을 풀고 고기가 잡히면 다시 그물을 걷는 식으로 조업하지요. 싣고 나간 그물 세 틀을 차례로 내린 후 10분 정도 지나면 처음 내린 그물을 당겨 올려야 해요. 첫 그물을 올리고 나면 바로 다음 그물을 올리고. 이렇게 세 틀의 그물을 내렸다가 올렸다가 반복해야 하는 중노동이죠. 조그만 배라 한번 배에 오르면 밥도 김밥으로 때워야 하고.”
-그물 하나의 길이가 얼마나 되나
“그물 하나 길이는 150m 정도. 일자로 생긴 그물을 강물 바닥 위 30~50cm정도까지 내려놓으면 물의 흐름에 따라 오가던 숭어들이 그물에 코를 박고 걸리는 거죠. 겨울엔 숭어들이 강 바닥에 깔려 있거든요. 여기 강물이 그냥 보기에는 잔잔하지만 물속 흐름은 엄청 빨라요. 밀물 때는 용화사 너머 행주대교까지 짠물이 올라갑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출항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나가나
“숭어란 놈이 야행성이에요. 해 뜨기 전에 왕성히 움직이죠. 해 뜨고 나면 어디로들 가는지 싹 없어집니다. 하지만 날씨가 추운 겨울철엔 숭어가 눈이 멀어요. 눈이 안보이니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왔다갔다 하다가 그물에 잡히는 것이죠. 예전엔 겨울에는 조업을 잘 안했는데 요즘은 겨울철 벌이가 훨씬 좋아요. 여름철 장마같이 비오는 날엔 조업을 안 나가니 공치는 날이 많고요.”
-그물 한 번에 얼마나 잡히는지
“많이 잡힐 땐 200kg까지 잡혀요. 없을 땐 50kg도 올라오고. 하루 조업하면 600kg정도 잡을 때가 많지요. 숭어 한 마리가 보통 1kg에서 1.5kg정도 나가니까 하루에 5~600마리 잡는다고 보면 되죠. 예전 10년 전쯤에는 하루에 20톤도 잡았어요. 오늘은 안개가 많이 껴서인지 많이 못잡었어요. 요즘은 너무 많이 잡아서 그런지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은 편이죠. 물이 깨끗해서 물고기가 많이 올라와요. 고기맛도 달지요.”

가격 저렴하고 씹는 맛 일품인 숭어

물고기를 종류별로 마음껏 먹어보았을 어부들이 최고로 치는 게 숭어다. 숭어는 조금 덜 짠 물을 좋아하는 습성 탓에 너른 바다보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 섞이는 곳에 많이 산다. 우리나라의 다른 큰 강들은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둑을 쌓고 있어 물이 섞이는 일이 없지만 한강은 하구둑이 없어 자유롭게 물이 섞이면서 풍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한강 하류 전류리 앞마당에서는 겨울철 숭어를 비롯 봄에는 황복, 농어, 웅어, 새우가, 가을 한철에는 참게, 여름에는 장어가 많이 난다.
“숭어가 맛나지요. 특히 숭어는 배에 모래집이 있는데 모래집이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기능이 있어서 깨끗하고 먹어도 탈이 안나요. 게다가 육질이 단단해 씹는 맛도 일품이고. 많이 잡혀 가격도 싸니 서민에게 최고의 횟감이지요.”
서 선장의 숭어 예찬이다.

신선한 횟감 찾는 손님으로 불야성 이루는 전류리 직판장

내수면 어업허가증을 손에 쥔 사람만 조업할 수 있는 전류리 어촌계.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아오면 집안 식구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어쩌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회도 떠주고 팔기도 했다. 그러다 비닐하우스 가건물이지만 번듯한 식당과 싱싱한 물고기 매장을 마련한 게 4년 전이다.
“어부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기도 했지만 매장이라고 벌여 놓으면 하루종일 붙들려 있어야 하고 해서 처음 시작할 땐 하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전류리 직판장에는 서 선장의 성춘호를 비롯, 태창호, 사랑호, 봉성호, 강원호가 운영하는 매대 5개와 갓 잡은 회를 맛볼 수 있는 식당 1곳이 전부다.
“지금도 평일에는 손님이 뜸하지만 주말에는 많이들 찾아오지요.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무척 늘었어요. 힘들기는 하지만 장사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좀 더 번듯한 시설을 갖추고 손님들을 맞았으면 한다는 서 선장. 서 선장은 김포시에도 일침을 가한다.
“시가 나서야지요. 우리같은 어부들이 뭘 압니까? 김포에는 관광지도 별로 없고, 먹을거리도 없잖아요. 가까이에 애기봉이 있으니 이것과 연계해서 사람들이 먹고 즐길 수 있는 코스를 개발해야지요.”

20대부터 시작한 뱃일, 천직이라 여기며 만족해

올해 52살인 서승석 선장. 군대 갔다오고 잠시 집에 있을 때 동네 어른들이 배 타는 걸 권해 뱃일을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어부일을 하셨다는데 본 적은 없고요. 집이 봉성리라 집 앞 개울이 한강까지 연결돼 있어서 어릴 적부터 한강에서 헤엄도 치고 배도 젓고 했지만 뱃일은 처음이라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요. 그때도 조업허가증이 있어야 조업을 할 수 있었는데 당시 돈으로 조업허가권하고 노젓는 목선 하나 장만하는 데 300만원쯤 들었지요. 이 허가권이 지금은 1억5천정도 하니 부자됐지요.”
예나 지금이나 어촌계에 소속돼 내수면에서 조업하려면 허가증이 필요하다. 나이 들어 더 이상 조업하기 힘들면 허가증을 사고팔 수 있다. 이 조업허가증이 요즘 시세로 1억5천 정도. 서 선장의 말대로 평생 고기잡느라 애쓴 댓가다.
“처음 일할 당시는 노를 저어서 강을 건너가야 했지요. 이쪽은 수심이 깊지만 강 건너는 수심도 얕고 뻘이라 물고기가 많아요. 그래서 노를 30분 정도 저어서 강을 건너려면 무척 힘이 들지요. 그래도 실뱀장어를 하룻밤에 2kg씩 잡아서 재미는 좋았죠. 돈으로 바꿔서 하루종일 술을 사먹어도 주머니에 돈이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물고기 잡는 일을 천직이라 여기며 한눈 한번 팔지 않고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서 선장.
“남들 못지 않게 돈도 벌고 후회는 없어요. 피곤하고 힘은 들지만요.”

어민끼리 같이 먹고 살아야죠

동이 트기 전 함께 배를 타고 나가고 잡은 물고기를 같이 팔고. 전류리 어촌계 어민들은 하루종일 함께 한다.
“같이 조업하는 어민들이 식구죠. 강 한가운데 나가서도 서로 경쟁은 안해요. 어디쯤이 물고기가 많다는 것은 알지만 꼭 그 자리에 갔다고 해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건 아니에요. 시간 따라 다르거든요. 시간이 명당이죠. 그래서 이번 그물에 내가 못잡으면 다음 사람 그물에 잡힐 테고, 오늘 못잡으면 내일 잡으면 된다 생각하지요.”
그래도 나는 조금 잡았는데 다른 배가 많이 잡으면 배가 아플 텐데. 짖궂게 물어봤다.
“물에서 싸웠어도 육지에 나오면 화해하지요. 매일 얼굴 보는데 서로 위해 줘야지요. 직판장에서 장사도 마찬가지죠. 처음엔 서로 많이 팔려고 신경도 쓰고 했지요. 그런데 이젠 지나가는 손님 호객행위는 안하기로 약속했어요. 어민끼리 같이 먹고 살아야지요.”
명절이라고 쉴 새도 없이 1년 365일 새벽이면 장화 신고 물고기 잡으러 나가는 서 선장. 세찬 강바람에 얼굴 피부는 거칠어졌어도 따뜻한 커피 한잔에 몸을 녹이고 그물을 끌어올린다.
“비 오는 날은 쉬는 날이에요. 여름 장마철엔 푹 쉬지요. 겨울엔 무척 바쁩니다. 새해 소망이요? 별 거 있나요. 식구들 모두 건강했으면 합니다. 내일 모레 새해 첫날 해돋이 보러 오셨다가 들르세요. 따끈한 떡국 한 그릇 같이 하지요.”
12월 30일 모처럼 따뜻한 날씨에 밤새 안개가 자욱한 날이다. 안개 덕분에 늦게 출항한 탓인지 다른 날보다 어획량은 적었지만 개의치 않는 서 선장.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하는 말이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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