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평야를 날아가는 큰기러기 무리

김포공항 일대 밀렵 성행, 허용 구간 벗어나 곳 총질에 주민 불안
안일한 당국 뒷짐 진 사이, 영문 모르는 야생동물은 눈을 감는다

지난 달 26일 오후 6시께 김포공항 주변인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농경지에서 엽총 소리가 들렸다. 수렵이 허가된 곳이 아닌 데다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와 큰기러기가 도래하는 곳이다.

농로에 세워둔 스포츠실용차(SUV) 2대와 사람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차 뒤로 살금살금 접근한 다음 급습했다. 외길인 퇴로를 막은 차엔 동료가 카메라를 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다른 한 대로 이들에게 다가섰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한 사람이 당황한 듯 눈길을 피하면서 딴청을 피웠다. 미처 감추지 못한 엽총이 자동차에 기대어 있다.

밀렵꾼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당황한 듯 딴청을 피우고 있다. 미처 숨기지 못한 엽총이 차에 기대어 있다.

상대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차 트렁크를 열어 밀렵한 야생동물을 확인해 자술서를 받아 경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상황은 끝이겠지만, 그건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모습이다. 단속권이 없는 민간단체의 밀렵 감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상대는 총기를 지니고 있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다 차 안을 조사할 권한도 없다.

뜻밖에도 상대가 ‘유해 조수 퇴치 허가증’을 내밀었다. 그는 “항공 안전을 위해 공항공사의 요청을 받아 새를 쫓고 있다. 밀렵감시도 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정황상 밀렵꾼이 분명해 보였지만 물증을 잡기 위해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보통 밀렵꾼들은 서너명이 한 조를 이뤄 두 명이 쏘고 한 명은 잡은 새를 거둔다. 한강 하구와 시화호 사이를 이동하면서 이곳을 지나는 큰기러기가 이들의 주요한 표적이다. 이들이 밀렵꾼이란 정황은 여럿 있다. 우선 공항은 조류 퇴치를 밤에 하지 않는다. 공항 요원과 달리 유니폼을 입지 않았고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다. 어쨌든 공항공사의 허가증까지 갖고 있으니 결정적 증거를 찾아야 한다.

한국공항공사에 문의했더니 김포공항 일대의 밀렵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분명해졌다. 공항공사는 올해에는 민간단체에 유해조수 퇴치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유해조수 퇴치 범위도 김포공항 항공기 이착륙 구역 내 피해 지역과 주변 100m 이내에 국한된다는 설명이었다. 이들이 새를 잡던 곳은 공항에서 1㎞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김포공항 주변을 나는 재두루미 무리. 공항 주변에 희귀한 두루미가 도래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김포공항 주변의 서울 강서구 오곡동, 인천 계양구,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등에서 밀렵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밤마다 들려오는 총소리에 불안해 못살겠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잇따라 들어오고 있고 들판에서는 밀렵으로 죽은 새들과 탄피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대장동 들판에는 밀렵꾼들이 엽총을 쏠 때 떨어진 탄피와 잃어버린 탄알을 쉽게 볼 수 있다.

공항 주변의 이 지역은 철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먹이를 먹는 곳으로서 한강과 시화호를 오가는 철새들의 이동 길목으로 매우 중요하다. 김포공항 담장 너머에 국제적 보호조인 재두루미가 서식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에 해마다 들어오는 밀렵 신고는 20여 건에 이른다. 엽총탄으로 기러기를 떼죽음시키고 독극물을 풀어 연쇄 죽음을 몰고 오는 일이 계속 벌어진다. 요즘엔 살상의 손맛과 쾌감을 느끼려 법정 보호종에 총질을 하는 밀렵꾼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단속 권한이 없는 민간단체의 힘으로 이런 밀렵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때문에 산이나 들판에서 밀렵꾼을 현장에서 잡았다 하더라도 경찰이 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리며 밀렵꾼과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다.

밀렵꾼은 감시단의 이런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야생동물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허점투성이다.

<글/사진 =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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