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인]이주노 사진작가


지역신문에 사진 재능기부 계속 할 터
사진 속에 김포 담는 작업 열중

증명사진을 찍겠다고 처음 갔던 사진관. 어색한 자세로 사진사 아저씨의 주문에 따라 고개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머리에 물도 묻히면서 예쁘게 나오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요즘처럼 몇 시간만에 사진이 완성되지 않았다. 어떻게 나올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 이틀을 기다렸는데, 막상 손에 쥔 사진은 화난 듯한 표정의 나 같지 않아 실망도 했다. 요즘은 개인프로필 촬영이나 웨딩포토, 베이비
포토를 전문으로 하면서 화려한 소품과 잔뜩 치장한 스튜디오가 대세다. 그래도 기자에게 사진관하면 떠오르는 것은 먼지 낀 액자에 담긴 가족사진, 어색한 증명사진, 그리고 동경과 희망, 꿈이다.

화려한 경력, 사진기자 이주노
사우동에 위치한 ‘이주노 사진’의 이주노 대표. 그는 1989년 코스메틱에서 사진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보령제약 홍보실에 근무하며 사내·사외 사보 사진은 물론 대부분의 회사 행사에 참여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서울신문사와 한겨레에서 일을 했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사진기자로 일하며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다. 인터뷰 기획이 잡히면 주요 인물 촬영은 모두 이 대표의 몫이었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는 물론이고 조순에서 고건까지 서울시장 얼굴도 그의 카메라에 담았다. 김혜수, 고현정, 송혜교, 서태지, 신승훈 등 이른바 A급 유명 연예인 사진도 찍었다. 사진기자로 자부심도 대단했을 터. 그랬던 그가 불현 듯 아무 연고없는 김포에 정착을 하고, 사진관까지 냈다. 잘나가던 사진기자를 그만두고 말 그대로 동네 사진관 아저씨가 된 게다. 왜일까. 궁금증이 생긴다.

김포에 정착, 제2의 사진인생을 시작하다
김포에 정착한 이유는 간단했다. 연애시절, 지금은 부인이 된 애인이 강화에 살았고, 이 대표는 광화문에 직장이 있어서 그 중간지점을 찾다가 김포에 자리 잡았다. 김포에 산 지 18년 정도라니 이제는 김포사람이다. 그리고 2006년,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그 때가 어떻게 보면 일도 가장 잘 하고, 열심히 할 수 있을 때였고, 기자로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많았죠. 그러다가 문득 내가 신문사에서 일을 계속 한다면 앞으로 7~8년 정도라는 생각, 이제는 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불혹의 나이에 2006년 4월 내 스튜디오를 오픈하게 된거죠.”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가장 큰 변화는 ‘갑에서 을로의 변화’였다고 한다. 기자시절에는 지시하고 가르치던 입장이었다. 콧대 높은 연예인이나 유명인도 부르면 왔다.말 그대로 ‘갑’이었다. 하지만 개인스튜디오를 열고나니, 상황은 달라졌다. 고객의 기분을 맞춰주고,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오픈 초기 클레임이 들어오면 ‘사진에 대해 뭘 안다고’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바꿔야 했다. 본인 이름을 달고 문을 열었으니, 그에 맞는 변화도 필요했을 듯하다.

김포에 스튜디오를 열고나서 지역사회를 위해 무슨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다. 하던 일이 기자요, 잘 하는 일이 사진 찍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역신문과 연계하여 재능기부로 작업을 했다. 신문사에서 신년호나 송년호 같은 특집호를 제작할 때 사진을 찍는다던지, 유명인 인터뷰를 할 때 인물사진도 찍었다. 지역사회에 좋은 일을 해보자고 어르신들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드리기도 했다. 요즘은 김포 사진을 찍으며 김포를 기록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담은 사진이 궁금해진다.

사진에 담긴 희노애락
이 작가는 고등학교 때 선배 권유로 사진반 활동을 하면서 사진과 인연을 맺었다. 인화하면서 하얀 종이에 상이 나오는데 ‘아! 이런 것이 사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점차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시(視)와 관(觀)과 찰(察)이 생겼다. 사진은 글이나 문장, 말이 아닌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효과이다.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찍지만 찍는 각도나 사진사의 눈에 따라 대상은 달라진다. 그는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프랑스 현대사진 작가 마크 리부가 ‘가장 좋은 사진은 바로 내일 찍을 사진’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사진 찍는 것 자체가 매력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이 순간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열정을 담아 지금을 담아내는 것이 최고의 사진이죠. 대상과 간극 없이 일대일의 상황이 되고, 피사체와 교제를 하면서 희열감을 느낍니다. 사진까지 잘 나오면 회심의 미소가 나오죠. 그 사진으로 상까지 받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거고…”

사진 찍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사람에게 사진 찍으면서 힘든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장례식 사진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서울신문에 들어갔는데, 그때 길옥윤 씨가 사망해서 장례식 취재를 갔어요. 그 때부터 이상하게 장례식을 많이 다녔어요, 김광석, 서지원, 김성재… 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무도 없는 상황에 장례식을 다니다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죠.” 심적인 고통도 있지만 사진 찍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추운 겨울날 사진을 찍기 위해 몇몇 시간 있다 보면 손발 끝에 동상이 생긴다. 몸도 아프고 고생도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도 사진이 주는 매력이 있기에,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기에, 사진이 주는 기쁨이 있기에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없다.

이주노 작가와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구석에 쳐박아 둔 카메라가 생각났다. 기자 역시 고교시절 사진반 활동을 하고, 대학시절 대학신문에서 사진기자를 했다. 암실에 들어가 작업할 때, 독한 약품 냄새로 편두통이, 손에는 피부병이 생기기도 했지만, 하얀 인화지에 상이 맺힐 때 그 설렘과 두근거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큰맘 먹고 산 카메라부터 ‘똑딱이’까지 한, 두 대의 카메라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요즘 휴대전화 카메라 성능도 아주 좋지 않던가. 그리고 두려운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러보자. 그 순간, 그 찰나에 당신의 꿈이 되고, 역사가 기록된다.

이유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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