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김포시 농민대상(채소분야) 수상자 이완재 씨


2천 평이 넘는 땅에 나란히 줄을 맞춰 길게 늘어선 비닐하우스 안에는 3~5센티미터 정도의 연녹색 새싹이 빼곡하게 올라와 있다. 시금치다.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 묻어나며, 단풍과 낙엽으로 물드는 계절에 여리고 고운 녹색의 새싹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 곧게 자라나온 모양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올 겨울 출하를 앞둔 어린 녀석들… 그 녀석들을 돌보는 농부의 손길이 따뜻하면서도 든든하다.

김포에 정착, 내 땅을 갖겠다는 꿈을 이뤄
이완재 씨가 김포에 들어온 지는 41년이 되었다. 1974년에 김포로 왔다. 지인이 땅을 5천 평 가지고 있었는데, 적임자라며 농사를 관리하게 했다. 그 해에 결혼도 했다. 슬하에 3남매를 두었다. 농사일 하면서 자식 셋 대학까지 보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농사도 짓고, 소도 키우면서 복합영농으로 신곡1리에 자리 잡았다. 이후 5천평 정도 땅을 샀는데, 아라뱃길이 들어서면서 거기에 2천평이 넘게 수용되어, 현재 2천8백여평 정도 소유하고 있다. 하우스에서 채소를 키우는 것이 주를 이루고, 화훼와 농사도 조금씩 한다.

"친구들이나 주위를 보면 부모형제 상속지분 받아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 때로 부럽기도 하지만 나는 항상 희망적으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내 땅을 소유하면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 수 있다'고 믿어왔거든.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 자수성가해서 땅 5천평을 샀다고 해봐… 나 스스로도 내가 자랑스러워"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평생을 농사에 매진해온 농부의 고집과 자부심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땅이 좋아.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농사가 유일한 수단이자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김포도 도시화가 되고 많은 사람이 농사를 그만뒀다. 그래도 농사를 고집했다. "농사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삼남매 키우고, 가르치고, 대학까지 보냈어. 소도 키우고, 채소도 키우면서… 그러다 보니 내 땅에 축적된 노하우로 농사를 지으면서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더라구. 남들은 농사가 귀찮고 힘들다고 하지만, 농사란 것이 진짜 매력이 있어."

평생을 농사만 지었다고 할 만큼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왔다. 2천 평 정도 하우스를 하면서 크게 욕심내지 않으면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다. 이제는 농사에 대한 자신만의 안목이 생겼다. 수도권 틈새시장을 노리면서, 적은 평수에서 알뜰하게 소득을 올리는 '강소농'이다.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산 것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대답은 '아니다'였다. "땅이 좋아. 땅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그래서인지 땅을 더 소중히 가꾸려고 한다. 눈앞의 이익을 좇으며 화학비료를 써대면 땅이 죽는다. 그래서 톳밥, 소퇴비, 짚 같은 것을 넣어 주면서 땅심을 기른다. 계분(鷄糞)만 쓰면 땅이 산성화되어 안 되니 계분, 우분(牛糞)을 돌아가면서 써야 땅이 살아난다.

농사꾼 되려면 밭을 갈아엎을 수 있는 소양을 길러야지!
농사로 제법 성공하다보니 귀향하거나 후배들이 자문을 구하러 오기도 한다. 일단 씨를 넣을 때는 부자지간 형제지간에도 무슨 씨를 넣으라고 말을 안한다. 망해도 자기가 망하고 벌어도 자기가 버는 거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트랙터로 갈아엎을 수 있는 소양이 있어야 돼. 사람 인생은 한번 끝나면 끝이지만 농사는 다음이 있거든. 쌀 때도 있고 비쌀 때도 있어. 그러니까 갈아엎는 것에 좌절하지 말고 다음에 희망을 찾아야 성공할 수 있거든."

갈아엎는다는 말은 쉽다. 하지만 농부에게 잘 자란 작물로 가득한 밭을 갈아엎는다는 것은 자식새끼 아픈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억울하고 화나는 것도 말할 수 없이 크지만, 무엇보다 '과연 다음 농사는 성공 할 수 있을까'라는 절망과 좌절이 더 힘들게 한다. 이완재 씨도 농사를 지으며 몇 번이나 땅을 갈아엎었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음에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다림과 믿음을 가지고, 갈아엎은 땅에 다시 씨를 뿌릴 수 있었기에 지금의 이완재라는 농부가 있는 것이다.

제20회 김포시 농민대상을 수상하고 있는 이완재 씨.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어
이완재 씨는 장학사업은 물론이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도 선뜻 나선다. 실재 손도 크지만, 남에게 베푸는 손은 더 크다. "우리 아이들 키우면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그 것이 가계에 보탬이 되더라구. 나도 받은 것만큼 되돌려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김포고등학교에 무등장학회를 설립하여 장학금을 주고 있다. 예비군 소대장을 10년간 하고, 새마을 지도자도 4년간 했는데, 그 때 소년소녀가장에게 무·배추 농사를 지어 기부를 해왔다. "남한테 내세울 만큼은 아니지만 주위를 좀 살폈지.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나니까 마음도 편하고 뿌듯하더라고!"라며 웃음을 짓는 얼굴에는 자기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주고 사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베품'을 알기에 더 부유하고, 넉넉해진다.

"씨를 뿌리고 자라는 것을 보면 자식 자라는 것처럼 즐거워. 수확해서 시장에 출하하잖아? 가격 잘 받으면 더 없이 좋고, 설령 안 좋더라도 현실을 보면서 이런 때도 있구나 하면서 스스로 깨닫고 감내할 수 있어야 여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농사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에 대한 보상일까? 이번 제20회 김포시 농업인의 날을 맞아 채소분야 농민대상 수상자로 결정 됐다. "부끄럽지. 덕망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상을 받는 것이 부끄럽기는 한데, 솔직히 말하면 기쁘기도 하지"라며 소탈한 웃음을 짓는다.

김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가구수는 총 5천8백가구이다. 그 중에서 채소만을 경작하는 농가는 150가구뿐이다. 그리고 점차 농사를 짓는 가구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완재 씨는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농사의 기쁨을 알며, 앞으로도 농사를 짓겠다고 한다. 그래서 '김포가 매력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농사꾼에게 김포는 서울 명동같은 곳이야. 그것만 제대로 알면 성공할 수 있지. 내 고장 김포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좋아. 내가 사는 곳을 비판하고 나쁘게 하면 누가 와서 살아? 결국 내가 사는 곳을 좋은 쪽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 지리상 김포만큼 좋은 곳이 없어"라며 김포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이완재 씨.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농부의 손에서 자라난 시금치가 얼마나 맛이 있을지, 그 싱싱하고 달콤한 시금치 맛이 기대된다.

이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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