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상류 이길리 마을 서식처에서 잠을 자고 있는 두루미

애써 감춰진 분단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원 평야 곳곳에서 발견된 두루미 무리의 모습은 그저 평화롭게만 보였다.

두루미 벽화가 그려져 있는 이길리 마을 안길

이길리 마을 전경

지난 8일 김포시하천살리기추진단과 함께 두루미의 잠자리로 잘 알려진 강원도 철원 이길리 마을을 다녀왔다. 추진단의 이번 방문은 2014년 한 해 사업을 되돌아보고 내년도 사업 추진 계획을 설명하는 워크숍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길리 마을에선 오래된 가옥이나 목조건물을 볼 수 없다. 6.25전쟁 당시 마을 전체가 소실됐고, 1979년 재건촌이 건설됐지만 이마저도 1996년 한탄강이 범람하면서 마을 전체가 침수됐기 때문이다. 현재 68가구에, 주민 120명 정도가 농삿일로 생계를 꾸리는 작은 동네다.

전쟁과 수해로 주민들은 큰 아픔을 겪어왔지만 얄궂게도 철새들에겐 낙원이 되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생태환경은 철새들에게 천혜의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광활한 평야는 먹이터 구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철새들의 평화를 질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들과의 평화로운 공생을 마을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삼고자 노력한다. 마을 내 가옥 지붕이며 담벼락이며 두루미 모형과 그림이 즐비하고, 아이들이 그린 두루미 그림으로 마을회관 벽면을 가득 메웠다.

마을 뒤쪽에 흐르는 한탄강 상류는 두루미들이 집단으로 잠을 자는 곳이다. 잠자리 바로 앞을 지나는 주민들의 익숙한 발걸음 소리 정도에는 미동조차 않을 정도로 이제 친숙한 이웃이 됐다. 수백에 이르는 이곳 두루미들은 주민들이 거두고 남은 이삭으로 배를 채우고 저녁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봄에 다시 러시아로 이동할 수 있도록 체력을 비축한다.

그렇다고 두루미들을 무전취식으로 탓할 일은 아니다. 두루미들은 이곳의 오염되지 않은 생태환경을 알리고, 맛있고 건강한 철원 오대쌀이 시장에서 인정받도록 나름 홍보대사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민들과 두루미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김포시는 각종 개발 현안이 이어지면서 ‘재두루미의 고향’이라는 명성이 어색할 정도로 그 개체수가 줄어들었다. 70년대까지 2,000여 수에 달했던 김포의 재두루미는 80년대 이후 강원도 철원평야와 일본 이즈미 등지로 서서히 서식지를 옮겨가더니 2014년 현재는 고작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의 숫자만이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이길리 마을이 걷고 있는 공존의 길이 ‘농촌에서 도시로’ 나아가는 김포와 그 규모나 방향이 다르고 인구 등 조건 자체가 비교될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해 버리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환경과 개발, 그 사이에 있어야 할 '공존의 가치'는 선택된 예가 거의 없다. 결국 두 가치가 부딪쳐 환경이 승리한 예도 없다. 한번쯤 다른 가치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디 가더라도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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