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수의 미술이야기 - 5

최문수
공공미술가.
설치미술가.
김포미술협회 자문위원.
경기도미술협회 공공미술분과
위원장.
김포공공미술발전소 대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도 전시회를 계속하는 이유는
작품이 돈벌이의 수단이기 전에 자신의 혼을 담은 창작의 결과물이기 때문

인사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문화예술 거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의 전통적인 정취를 느끼고 수많은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기에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평일에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인사동입니다. 그런데 북적이는 거리와는 달리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갤러리입니다. 아트센터라고도 하고 화랑이라고도 하며 미술관이란 명칭을 쓰는 곳도 있지만 모두가 똑 같은 미술작품 전시장입니다.

현재는 강남의 청담동, 압구정동, 신사동, 경복궁 인근의 사간동, 소격동 등의 갤러리가 더욱더 활성화되고 있기도 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갤러리 하면 인사동이었죠.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처음 찾는 곳이 바로 인사동이었고 그룹전을 하기 위한 장소도 인사동이었으며 중견작가가 되어서 찾는 곳도 원로작가가 되어서 찾는 곳도 바로 인사동이었습니다. 물론 현재도 미술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인사동이기도 합니다.
청담동과 소격동의 갤러리들이 몇 개월 동안 여는 기획전시를 주로 하는 데 비해, 인사동의 갤러리는 대관전시를 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대관전시란 일주일 전시장을 임대해 사용하는데 작가가 직접 임대료(대관료)를 지불하고 전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갤러리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일주일 대관료는 약 300만원에서 500만원선입니다. 거기에다 리플릿 제작을 비롯해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더하면 상당한 금액이 소요됩니다.

일반적으로 인사동의 갤러리들에서는 수요일에 새로운 전시를 오픈합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이면 수많은 미술인들이 지인들의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인사동으로 속속 모여듭니다. 인사동의 갤러리가 거의 100여군데 가깝게 있다고 보면 1개 전시장에 20명만 모인다 하더라도 약 2,000여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미술인들이 모이는 셈이죠. 지난주에 다른 작가의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일주일 만에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날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오픈식 후에는 꼭 뒤풀이를 합니다. 뒤풀이에 필요한 비용은 참석한 사람들이 조금씩 보태기도 하지만 대부분 작가가 지불합니다. 그 비용도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까지 차이는 있지만 이미 큰 지출을 해온 작가로서는 부담스런 금액이지요. 그렇지만 나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기꺼이 대접합니다. 식사를 하며 얼큰하게 소주 한잔 걸치면서 작가의 전시를 다시 한번 축하해주고, 그렇게 밤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돌아갑니다. 그리고 작가는 긴장과 설렘으로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다음날 목요일부터 갤러리는 간혹 오픈식에 참여하지 못했던 지인들이 한두 명씩 찾아오긴 하지만 일반관람객들이 거의 찾지 않기에 전시장은 한가하기 그지없죠. 혹시나 작품에 관심 있는 컬렉터가 찾아오지 않을까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갤러리 밖을 내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음에도 갤러리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죠. 그렇게 1주일의 전시를 마치고 난 후 화요일엔 작품을 철수합니다. 전시결과에 대한 손익 계산을 해 보지만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다음 전시준비를 합니다.
전업작가에게 작품은 돈벌이의 수단입니다. 그러나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도 전시회를 계속하는 이유는, 작품이 돈벌이의 수단이기 전에 자신의 혼을 담은 창작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팔아 돈을 벌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상품이 아니라 작품인 것이죠. 그래서 작가들에게 가장 두려운 상황은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에 놓여 있는 방명록에 지인의 이름만 적혀있는 경우입니다. 고뇌의 끝에 완성시킨 소중한 작품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좌절할 수밖에 없겠죠.


인사동의 갤러리는 입장료가 없습니다. 누구나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그러나 갤러리의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갤러리에 가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감히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세요. 적막감이 넘치는 갤러리에 활력을 넣어 주세요. 그리고 작가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작품에 대해 질문도 해 보세요. "색이 예쁘네요, 작품이 크네요"와 같이 아주 가벼운 감상평도 좋습니다. 물론 작품을 구입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은 절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는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과감하게 작품 값을 깎아 보기도 하세요. 비록 작품을 구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관심이 작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답니다. 지속적인 관심은 작가가 작품활동을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앞으로는 인사동 쌈짓길에 나들이 가실 때 그 옆의 갤러리에 들러서 10분이라도 구경하고 나오는 것은 어떠신가요? 우리나라 미술계를 휘어잡을 스타 작가가 탄생하는 데 큰 힘을 보태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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