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 촬영 등쌀에 잠 못드는 두루미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이들에게 안온한 잠자리는 필수적이다.

10월17일 철원군 이길리 한탄강 상류 쪽 두루미 잠자리 앞에 컨테이너 탐조대가 들어선 다 는 제보를 받았다. 바로 철원으로 향했다.

한탄강 상류 이길리 부근에 있는 두루미의 마지막 잠자리.

두루미 잠자리에 가보니 가슴이 무너졌다. 둑을 파헤치고 그 위에 컨테이너 탐조대를 설치하려고 터파기가 끝나 있었다. 이길리는 민통선 지역이어서 일반인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이길리 동네 앞 한탄강에는 두루미 잠자리가 있다.

콘크리트 기초를 하기 위해 쌓아놓은 패널.

그나마 하류 쪽 잠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방해를 피해 옮겨온 한탄강의 마지막 잠자리이다. 그런데 이곳의 잠자리 두 곳을 교란하는 컨테이너 탐조대가 들어서는 것이다. 두루미는 다른 동물에 견줘 매우 예민하다. 잠자리는 더욱 조심스럽게 고른다. 잠을 잘 때는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방이 트인 조용한 곳을 고르는 것이다.

이길리 논에서 취식활동을 하고 있는 두루미.

누군가 잠자리를 엿본다면 두루미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두루미는 사적 영역과 집단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새다. 자기 공간을 간섭받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용히 탐조하더라도 사람의 간섭은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두루미는 가장 안전한 곳에 터 잡고 안전을 위해 무리를 이루어 잠을 잔다.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기만 해도 잠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잠자리를 방해받으면 그곳에 며칠씩 오지 않는 조심성을 보인다. 잠자리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탄강 상류에 컨테이너 탐조대를 설치하는 주체는 한국농어촌공사이다. 민북 지역인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에 대한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다니 환영할 일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두루미를 보호해야 그것을 바탕으로 지역경제도 도움을 받지 않겠는가.

10월 18일 한국농어촌공사 담당자와 전화 통화를 했다. 두루미 잠자리에 탐조대를 만들면 어떡하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주민들이 원해서 한다고 했다. 주민과 다시 상의하겠다고 했지만 다시 연락이 없다.

3년 전 한탄강 하류 쪽 잠자리 인근에 비닐하우스와를 짓고 컨테이너를 놓고 모이를 주며 사진촬영과 탐조를 하였고 몇 개월 전 아예 철원군에서 탐조대와 사진촬영을 겸한 반 지하  위장 벙커 탐조대가 설치되었다. 그로 인해 두루미들은 상류 쪽으로 옮겨갔는데 이제는 경쟁을 하듯이 두루미의 잠자리를 방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어촌공사는 지금이라도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두루미와 이길리 주민이 공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무분별한 공사로 두루미를 쫓아버린다면 지역 주민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될 것이다.

1번 잠자리는 이미 탐조대가 설치된 곳이다. 두루미가 새로 옮긴 오른쪽 2번과 3번 잠자리에 현재 탐조대를 설치하고 있다.

공사가 시작된 지금은 재두루미가 오기 시작하는 시기다. 이미 600여 마리가 철원평야를 날고 있다. 그러나 잠자리인 한탄강에 머물지 않고 목을 축이고 목욕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잠자리마저 파괴되면 두루미의 겨울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두루미는 어디로 가야 하나? 철원에 온 재두루미 가운데 2000여 마리는 일본으로 떠나고 남는 개체는 700여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한탄강의  마지막 잠자리 이길리. 이곳을 지켜야 철원의 두루미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찾아 올 것이다. 사람과 두루미의 약속이다.

글·사진=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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