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姓)을 못 바꾼 게 한(恨)이야”


한글이름 보급에 바친 한평생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3대째 한글이름 호적에 올려
며느리 이름은 사돈 생각에 한글이름으로 바꾸지 못해
호적법 상 성은 바꿀 길 없어 한글로 못 바꿔 한 남아

세종대왕은 47살 때인 1443년 12월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하고 50살 때인 1446년 9월 훈민정음 새문자를 백성에게 알렸다. 현존하는 글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글자로 인정받고 있는 한글.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이 올해 568돌을 맞는다. 그러나 공휴일이 많아 경제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2012년 말 우여곡절 끝에 공휴일로 재지정된 한글날. 한글날을 맞아 온몸으로 한글을 사랑하고 지키며 한평생을 살아온 밝한샘(79) 선생을 만났다.

국내 최초로 한글이름 호적에 등재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글이름을 호적에 등재하셨다 들었습니다.
“68년도에 아들을 낳았는데 호적에 출생신고하면서 이름을 ‘보리나라’라고 지어서 냈더니 면사무소 직원이 안 된다고 하지 뭐야. 한참을 실랑이 했어. 간신히 내 주장대로 한글이름으로 등재했지. 아마 국내 최초일 거야.”

-아드님 이름을 한글로 짓게 된 동기는요.
“중국식 이름인 한자로 이름 짓기 싫어서 한글로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참고할 만한 책도 없고 해서 6개월 동안 출생신고도 못하고 이궁리 저궁리했지요. 그러다가 아들이 3월에 태어났는데 그 때가 보리가 잘 익을 때 아닙니까. 그래서 보리를 넣어서 보리나라라고 이름 지었지요. 2년 뒤 딸이 나왔을 땐 유리나라라고 지었고.”

아들이 태어났을 때 밝한샘 선생은 당시 배화여고 서무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들 이름을 한글로, 그것도 4자로 지은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자 누가 제보했는지 1주일만에 일간지 기자가 찾아와서 인터뷰도 했다.

‘박’씨를 ‘밝’씨로 못 바꿔

“원래 내 이름은 박홍원이예요. 내가 15살 때 6.25가 났는데 그 때 국군들 신문을 보니 모두 한글로 돼 있더라고. 당시는 거의 모든 책이 한문 투성이였는데 그걸 보고 감명받았지요. 그때부터 한글사랑이 시작된 거예요.”

밝한샘 선생의 어머니는 선생을 잉태했을 때 태몽이야기를 늘 하셨다고 한다. 태몽은 우물 속에 자라 한 마리가 노니는 꿈.

“이것저것 글도 쓰고 하면서 예명을 지어야겠다 생각하고는 어머니의 태몽을 갖다가 한 마리의 자라가 노는 샘이라는 뜻으로 한샘이라고 지었어요.”

한글사랑에 푹 빠진 밝 선생. 아들과 딸의 이름을 순우리말 이름으로 짓고 드디어 1979년 자신의 이름마저 개명한다.

“개명은 쉽게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성은 바꿀 수가 없게 됐어요. 호적법에는 성이 없는 사람이 새롭게 성을 만드는 창성(創姓)은 할 수 있지만 성을 바꾸는 개성(改姓)은 안 되게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밝다’는 의미로 ‘밝’씨로 개성하고 싶었지만 그건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밝한샘 선생은 ‘박’씨를 ‘밝’씨로 바꾸기 위해 대법원에까지 진정했지만 기각당했다. 선생이 이에 굴하지 않고 법원에 ‘박씨 사용 포기신청서’까지 내며 투쟁했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온 가족이 한글이름이지만 며느리 이름만은 못 바꿔

“아들, 딸 모두 이름을 순우리말로 지었고, 가장 반대가 심했던 집사람마저 순우리말로 개명했어요. 반대의 우두머리라고 ‘마리’라 이름 지어줬어요. 손주들까지 이름을 한글로 했는데 며느리 이름은 못 바꿔서 아쉽네요. 사돈집 생각도 해야하고 본인들도 고사하고 해서.”

이 정도 한글사랑은 아무도 못 말릴 사랑이다. 한 평생 우리 한글로 이름을 만들어 쓰자는 운동을 펼치며 한글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밝한샘 선생.

“한글이름을 쓰는 것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영혼을 갉아먹은 문화적 정신적 사대주의를 벗어던지는 것이예요. 기자님 이름은 쇠북 종에 공 훈자를 쓴다니 기자님 이름을 지을 땐 어르신들이 자식이 그 뜻대로 잘 살라고 지었을 텐데 정작 이름 표기는 한글로 하고 있잖아요. 한자로 짓고 한글로 쓴다는 건 정신이 들어있지 않은 겁니다. 성도 김씨나 박씨 정도 빼고는 모두 중국 한족의 성씨를 가져다 쓰는 건데 이런 성을 우리가 계속 쓸 필요는 없지요.”

한글이름 쓰는 것은 정신적 독립이자 자주성을 찾는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밝한샘 선생. 몸은 비록 나이들었지만 자신의 주장을 말할 때는 열혈청년의 모습이다. 기자가 보기에 밝한샘 선생의 주장은 조금 과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선생의 사랑은 한글날을 맞아 한번쯤 귀 기울이고 되새겨야 할 외침이었다.

김종훈 기자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