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엄마 시에 빠지다


돼지 키우며 17년째 통진문학과 함께 한 세월
구제역 때 다친 마음 아직 아파 시 쓰기도 멈춰
소소한 일상 시로 표현하며 좋은 시 남기고 싶어

통진문학회 김일순 회장(55)을 만나러 가는 길. 김 회장의 삶터인 태연농장 가는 길은 굽이굽이 끝없이 들어간다. 고정리 큰길에서 빠져나와 하늘은 높고 넓은 들판 가득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 사이로 난 좁은 농로를 한없이 간다. 길을 잘못 들었나 의심이 들 무렵 산을 울타리 삼아 넓게 자리잡은 농장이 보인다. 꽤 규모가 있는 농장이다. 이 농장에 돼지 2,500마리를 키우며 시를 쓰는 시인이자 통진문학회의 살림꾼 김일순 회장이 있다.

답답한 시골 생활 탈출구가 된 통진문학회

“일찍 결혼했어요. 23살 때. 이곳 고정리는 지금도 한적한 곳이지만 제가 왔을 땐 더 했지요. 이곳에서 시부모님 모시고 살려니 행동도 조심해야 하고 답답했어요. 애들도 좀 커서 중학교, 초등학교 다닐 땐데 마침 통진신협에서 주부교실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댄스반도 있고 여러 강좌가 있는데 글짓기반이 꽂히더라고요.”

검단에서 나고 자란 김 회장. 중매로 고정리에 시집왔다. 말 그대로 작은 동네에 시부모님과 같이 생활하려면 꽤나 힘들었을 터. 동네 아낙들과 주부교실로 탈출했지만 글짓기반은 생뚱맞았다.

“글쓰기 좋아하는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시간 날 때마다 이것저것 책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생활이었어요. 책이라봐야 뭐 어려운 책은 아니고 비록 잡지나 뒤적거리는 수준이었지만.”

겸손한 말이지만 문학에의 꿈을 펴기 위해 주부교실 다니는 것도 만만찮은 일은 아니었을 것. 집에서 통진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큰길까지 30분 걸어나가 버스를 타야 했다.

글을 모아 문집 엮고 문학회 회장까지 맡아

“배우는 1년 동안 너무 행복했어요. 20명 정도 함께 했는데 끝까지 이 정열 잃지 말고 함께 가자고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 <함께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문집도 만들었지요.”

농사일 하랴 커가는 아이들 돌보랴 문학수업 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을 터. 그러나 마음이 즐거우니 힘든 일도 힘든 줄 몰랐단다.

“완벽주의자까진 아니지만 문학한다고 집안일 대충 하는 건 제 성격에 맞지 않아요. 밭에서 풀을 뽑더라도 풀과 교감한다고 해야 하나요? 호미질 하다가도 개미가 있으면 호미로 땅에다 개미 길을 내주기도 하고요. 이런 게 다 문학 덕분인 것 같아요. 일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즐겁게 일하려고 하지요. 감수성이 좋아졌다고나 할까요.”

김 회장은 밭일 하는 동안, 아침에 산책하다 동네사람과 만나 듣는 이야기 등 소소한 일상생활에서 얻는 감동을 시로 표현한다.

“일상에서 떠오르는 시상은 많은데 아직은 글로 표현이 잘 안 돼 아쉬워요.”

문학회 회장까지 하시는 양반이 겸손이 지나치다는 기자의 말에 김 회장은 겸손의 극치를 보여준다. “회장은 제가 심부름 잘 하니까 시켜준 거지 글 잘 쓴다고 시켜준 건가요”라고.

회원뿐 아니라 회원 가족까지 함께 하는 문학모임

주부교실 글짓기반으로 시작한 문학모임이 17년째 이어져 매년 <통진문학>이라는 문집을 발행하고 있는 통진문학회. 문학이 좋아 모인 이름없는 시골 사람들이 점차 지역의 문화를 대표하는 큰 문학회로 성장했다.

“다른 문학회 같은 데 가보면 서로들 무슨무슨 작가님, 무슨무슨 선생님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저희는 70이 넘은 회원에게도 서로 오빠, 언니라고 부르지요. 회원뿐 아니라 모임엔 배우자들도 함께 모여 다같이 가족처럼 지내고 있어요. 이게 가장 큰 강점이지요.”

은근히 남편의 외조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끈끈한 정이 통진문학회가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구제역 이후 아직 마음 아파 글 쓰기 어려워

김 회장의 문학생활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2,500마리에 이르는 많은 돼지를 키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고 거기에 화재와 구제역 파동은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구제역 때 돼지들 파묻고는 한동안 밥을 못 먹었어요.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그때의 일을 시로 남기고 싶은데 아직까지 상처가 남았는지 글쓰기가 쉽지 않네요. 언젠가는 마음이 치유되면 꼭 시로 쓰고 싶어요.”
통진문학회와 함께 하며 지낸 긴 시간. 김 회장의 바람은 오직 통진문학회가 더욱 발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좋은 작품 쓰고 싶은 욕심도 있지요. 새벽이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시를 쓰고 있지만 시보다도 우리 문학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문학의 기쁨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곧 17번째 <통진문학>이 발간된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얻은 기쁨을 노래한 김 회장의 시가 수록될 <통진문학>. <통진문학>과 ‘통진문학회’의 번영을 기원해 본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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